제 6장 식량 생산민과 수렵 채집민의 경쟁력 차이
인류는 수렵 채집 사회에서 식량 생산을 하는 과도기를 거쳤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농업혁명이라 부르고, 인류가 획기적으로 진보하였다고들 생각을 한다. 그러나 사피엔스에서의 관점처럼 식량생산으로
인해 이득을 본 것은 먹거리를 기르지 않으면서도 풍요롭게 살고 있는 1세대의 사람들뿐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식량을 통해 더 많은 식량을 벌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점점 더 가난해지는 빈부격차의 증가와 계급사회에 출연을 야기시켰다.
분명 사회 전체로 보았을 때는 인구의 증가와 먹을거리가 늘어났지만, 오히려 한 명 한 명이 먹게 된 양을 살펴보면 이전만 못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6장에서는 식량 생산이 발명과 발견이 아니라고 언급하고 있다. 발명과 발견은
어떠한 결과를 예측하고 진행하지만, 식량 생산은 인류가 먹을거리를 구하려던 시행착오의 하나라고 적혀있다. 나도 사실 혼동을 했던 부분은 식량 생산이 정착 생활을 가져왔다고 역사시간에서는 늘 배운다. 하지만 그 반대로
정주가 이뤄지고 나서야 식량 생산이 시작되었다. 또 생각해볼 수 있는 부분이 유랑 생활을 하면 식량 생산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들 많이 생각을 하지만, 뉴기니의 유랑민들이 바나나를 재배하는 사례만 보더라도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두 번째로 알 수 있는 부분은 식량 생산은 서서히 발전해왔다는 것이다. 이는 사람들마다 선호하는 먹거리가 다르고 이로 인한 선호 순위가 가지각색인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이러한 다양한 순위를 식량 생산에 있어 고려하게 되었고
식량 생산이 서서히 발전하게 되었다.
아까도 말했듯이 식량생산은 인류의 먹거리 탐방과정에서의 하나의 시행착오의 부산물이다. 원시시대에는 식량생산이라는 개념이 없었기에 식량생산을 목격할 상황이 없었다. 하지만 한 번 식량생산의 모태를 목격하고, 다른 사람들이 모방 및 개선을
조금씩 해나가면서 지금의 식량생산에 이르게 되었다. 이는 수렵 채집 생활의 생산량이 낮을 수록 빠르게 전파되었다.
그렇다면 식량 생산이 수렵 채집보다 경쟁력을 갖추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기후 변화나 사냥꾼들의 사냥 솜씨로 인하여 과거에 비해 야생 먹거리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환경변화에 적응하고자 식량 생산이 증가하였다.
둘재,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사례와 같이 작물화할 수 있는 야생 식물의 증가로 인하여 식량 생산이 증가하였다.
셋째, 야생 먹거리를 채집, 가공 저장하는 기술의 발달로 식량 생산이 증가하였다.
넷째, 식량 생산의 증가로 인한 인구 밀도의 증가가 다시 식량 생산의 증가를 야기시켰다.
제 7장 야생 먹거리의 작물화
현재 우리가 먹고 있는 쌀,보리,콩 등의 식품들은 야생 식물에서부터 작물화가 이루어져 나온 것들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식물들을 어떻게 작물화가 되었을까? 야생 식물의 작물화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어떤 식물을 재배함으로써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인간 소비자에게 더 유용하도록 야생 조상을 유전적으로 변화시키는 일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우리의 조상들은 무의식적으로 작물을 재배하였고, 그 중에서 사람 입에 맞는 작물들의 종자만을 의도적으로 재배함으로써 지금의 작물이 나타나게 되었다. 아몬드의 예만 보더라도, 초기에 아몬드는 쓴맛을 냈지만, 이 중에서 쓴맛을 내지 않는 아몬드의
돌연변이 형태가 나타났고, 조상들은 그 종자를 집중 재배하였다.그리거 이러한 맛,과육의 양과 같이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인자 외에도 다른 요인들이 작물 선택 기준으로 작용하였다.
완두콩의 예를 보면, 완두콩이 발아를 하려면 꼬투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나 반대로 인간이 수확할 수 있는 것은 꼬투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돌연변이 개체이다. 이런 유전자 돌연변이의 선택으로 꼬투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완두콩이 작물로 선택되었다.
이러한 인간의 인위적 선택을 받은 야생 식물들만이 오늘날의 작물로 거듭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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