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함은 정반합의 변증법을 거쳐 우리를 성장 시키고 항해하게 한다. 나를 불편하게 했던 책과 사람과 경험들을 떠올렸다. 나는 어쩌면 항해하고 있었다.
채사장 작가님의 첫 항해를 열어준 책, 첫 번째 계단: 죄와 벌
<죄와 벌>
채사장의 열한 계단의 첫 번째: 죄와 벌
가난한 휴학생 로쟈는 전당포 노파의 이야기를 듣는다. 가난한 사람들을 밟고 부를 쌓은 노파는 병들어 죽음을 앞두고 있다. 그리고 죄를 씻기 위해 당시 타락한 교회에 모든 재산을 환원하려 한다. 로쟈는 영웅주의에 심취해 있다. 그는 인간을 두 가지로 분류한다. 평범한 사람과 비범한 사람. 궁극적 선을 위해 소수를 희생시킬 수 있는 영웅과 그를 주저하는 평범한 사람이 있다. 영웅은 스스로의 양심에 따라 정의를 위해 법 위반 권리를 갖는다. 로쟈는 자신이 영웅이라 여기고 치밀한 준비 끝에 노파를 죽인다. 그러나 갑자기 마주친 노파의 여동생도 죽인다.
그리고 작가님은 우리에게 두 가지 질문을 던진다.
내가 로쟈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주제를 가지고 학생과 토론하는 시간이 있었다. 거의 대다수는 살인을 택하지 않았다. 공리주의, 의무론과 목적론의 관점 등 이야기가 이어졌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로쟈라면 스스로 비범한 사람이라고 여길만한 용기와 확신을 갖기 힘들 것이다. 그래서 그 확신을 갖은 영웅을 찾아 사람을 모으고 그를 추대하겠다고. 그리고 가장 기억에 남는 대답이 있었다. 자신을 희생해 트리거가 되겠다는 의견이었다. 개인적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사회문제로 대두시키는 사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다음 질문은,
영웅에 대한 로쟈의 사상은 타당한가
독일 파시즘, 필리핀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의 예를 들며 영웅주의의 폐해를 다뤘다. 그리고 어떤 학생은 정도의 차이에 집중했다. 극단적인 살인은 심한 거부감을 주지만 홍길동의 의적 활동은 절도죄기 때문에 거부감이 덜하다는 것이다.
난 강연 시 부각되진 않았지만 노파의 여동생을 떠올렸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치밀하게도 예상치 못한 희생을 집어넣었다. ‘악’에 대한 희생은 일종의 처벌이며 타당하다는 생각을 하기 쉽다. 사실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그런 이야기가 다뤄진다. 선한 주인공이 악을 제거하고 좀 더 평화롭고 정의로운 사회가 도래한다. 그런데 거기에 더불어 노파의 여동생처럼 무관한 사람이 희생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궁극적 선을 위한 희생은 평범한 사람에게도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해당된다. 그럼으로써 희생은 우리 모두의 얘기가 된다. 우리는 세상을 선과 악으로 구분한다. 그리고 우리는 당연하게도 선의 편에 놓여서 악을 응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분법적 생각은 현실에 적용되지 않는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절대 선도 악도 아닌 사람들이다.
우리는 난세에 홍길동과 배트맨 같은 영웅을 기대하지만 희생에 대해서는 간과하기 쉽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가 떠올랐다. 어벤저스 팀은 악당을 무찌르던 중 시민이 죽는다. 계속해서 부수적인 피해가 일어나자 정부는 ‘슈퍼히어로 등록제’로 어벤저스를 관리 감독하려 한다. 어벤저스 내부는 정부 입장을 찬성하는 아이언맨 팀과 정부 개입 없이 자유롭게 악당에게서 사람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캡틴 팀으로 갈라진다.
나는 로쟈의 영웅주의에 대한 맹점을 ‘스스로의 양심에 따라’ 행사되는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에게 주어지는 법 위한 권리는 누구로부터 오는 것 인가. 자기확신에서 온다. 하지만 정당성은 결코 자신에서 비롯돼서는 안 된다. 자기 확신은 위험하다. 실제로 단 한 사람에 의해 그의 생각은 바뀌었다. 소냐는 자기희생이라는 그가 몰랐던 세계를 보여주었고 로쟈의 자기확신을 무너뜨린다.
엄청난 능력을 지닌 어벤저스 조차 권리에 제한을 받는다. 엄청난 능력을 가진 그들은 선택 받았고 자연스럽게 영웅이다. 우리는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정의 실현 단계에서 건물이 부서지고 무고한 사람이 죽는다. 이런 일이 허무맹랑한 얘기는 아니다. 지금, 현 필리핀 대통령 또한 논란이 되고 있다. 마약과의 전쟁을 치르며 초반 90%의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초법권과 무기로 무장한 자경단의 잔혹 행위는 문제가 됐다. 현재 계엄령을 선포하고 교전을 겪고 있는 필리핀엔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고 있다. 그의 부적절한 언행에도 여전히 80%의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하지만 국민의 지지라는 정당성을 잃는 순간 그의 권리는 언제고 제한될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혼란스럽다. 대중의 지지에 의한 영웅은 타당 한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자기확신을, 다수의 선택을, 우리의 영웅의 선택을, 무엇이든 늘 경계해야 한다.
<영원회귀와 죽음과 삶>
좋아하는 챕터 중 하나인 네 번째 계단에 대한 얘기는 시간이 부족해서 아쉽게 다루지 못했다. 니체는 채사장님에게도 나에게도 강렬하게 남아있다. 특히, 영원회귀 개념은 삶에 대한 자세를 완전히 변화시킨다. 죽음 뒤엔 천국도, 환생도, 無도 아닌 반복뿐이다. 이 삶을 저번 삶에서도 저 저번 삶에서도 계속해서 반복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럼에도 삶을 긍정할 수 있는가. 숨이 턱 막혔다.
채사장님은 항해하는 삶을 권하면서 또 어떻게 살면 좋을지 얘기했다. 그리고 묻는다. 우리는 죽을 때 교양수업에서 아쉽게 b맞은 것을 후회할까 아니면 소중한 사람과의 아쉬운 순간을 후회할까.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나는 “모리와 함께한 일요일”, “숨결이 바람 될 때” 등의 책을 읽으며 죽음을 실감하곤 한다. 그리고 새로운 삶을 다짐하지만 오래 가지 않는다. 우리는 어쩌면 조금만 성찰하면 조금 더 성장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럴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여유를 잃어간다. 공부를 해야 하고 일자리를 구해야 한다. 시험에 나오지 않는 것들을 경시하는 습관은 오래됐다. 현실에 치여 표류하는 것을 누구도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언제나 돛을 펴고 항해할 수 있음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학교에서 평소 좋아하는 팟캐스트 패널이자 감명 깊게 읽은 책의 작가님을 볼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한 시간이었다. 오늘처럼 무한반복 돼도 좋을 하루를 열심히 만들어야겠다.
최일우2017-06-25
저도 불편한 책읽기를 해야 할 듯 하네요
최일우2017-05-29추천(1)
열한계단의 저자 채사장 강연 후기
처음 채사장님에 대해서 알게 된 건 같이 일하던 분의 추천으로 듣게 된 인터넷 라디오 팟캐스트의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줄여서 지대넓얕이란 방송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항상 흥미로운 주제를 선별해 2시간동안 얘기하는 방송을 운전하면서 듣다 보면 서울 어디든 도착해있을 시간이 됩니다.
이번 강연은 저자가 처음 접한 인문학인 “죄와벌”에 대한 얘기였습니다. 인원이 소수여서 강연은 토론처럼 진행되었습니다.
서두는 항해와 표류에 대한 얘기로 인생을 산다는 것을 항해, 생존한다는 것을 표류라고 빗대어 말했습니다. 덧붙여 우리가 생존하는, 표류한다고 생각하는 삶이 그렇지 않을 수 있단 것을 말하며, 우리는 그들의 삶을 모르기에 감히 평가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타인을 이해하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조금씩 이해합니다. 그 형태는 연인 혹은 친구 등의 관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 노력을 들이지 않고 타인의 삶을 쉽게 표류 혹은 항해라고 판단하기 어렵고, 우리는 판단기준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그렇게 행해서는 안됩니다. 삶이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건 아마 우리 스스로도 힘들 것 입니다. 표류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지금 무언가를 하고 있지 않을까요?
채사장님의 마지막 말들이 가슴이 깊게 남아있습니다. 책으론 새로운 것을 배우기는 힘들다. 라는 말이었고, 최근 읽은 쇼펜하우어의 문장론에서도 다독은 독이다 라고 말하는 구절과 비슷한 느낌으로 닿았습니다. 단순 주입식의 책 읽기가 아닌, 내 생각을 정리 할 수 있는 독서야 말로 느리더라도 제대로 읽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렇게 토론하는 시간들은 정말 소중한 시간이라고 채사장님은 말합니다. 우리가 나이를 먹을 수록, 학생의 신분을 벗어날수록 이런 기회는 줄어들 것이라고. 그리고 말합니다. 놀고 사랑하라고 얼마 전, 인생의 끝에서 우리가 “살만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삶은 어떤 삶일까 많이 생각합니다. 돈을 많이 벌어 여유로운 삶을 사는 것? 처음에는 이렇게 생각했지만, 회사를 다녀보면서 경제활동밖에 못하는 제 삶에서 권태를 느꼈고, 지금은 천천히 돌아가려 합니다. 학점과 졸업, 그리고 취업이 전부가 아님을, 내 삶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한다는 믿음으로 현실의 충실하며 살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한창 해야 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이 많을 나이에 떠난 제 친구의 멈춰있는 삶은 저한테 멈춰 있지 말고, 나아가라고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