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캠프- '읽기, 글쓰기, 말하기 워크숍' 참가 후기 (문예창작학과 2학년 신유안)
영국의 다큐멘터리 ‘The Human Footprint’에 따르면, 여성이 하루 평균 말하는 단어의 개수는 6,400개에서 8,000개에 달한다고 합니다. 말하는 단어의 수가 이렇게나 많은데, 읽는 단어와 쓰는 단어들은 대체 얼마나 될까요. 생각해보면 우리는 참 많은 단어와 문장들을 읽고, 쓰고, 말하며 살고 있습니다. 저만 해도 그렇습니다. 매일 같이 칠판이나 교재에 적힌 글자를 읽고, 친구에게 카톡 메시지를 써 보내고, 점심시간엔 상록원 배식대에 가서 크게 외칩니다, “이모님, 여기 라면 하나요!”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거대한 단어의 홍수 속에 파묻혀 살고 있는데, 정작 누군가가 나타나 “당신은 읽기(쓰기, 말하기)를 ‘잘’할 수 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어떨까요. 아마 저는 쉽게 대답하지 못할 겁니다. 그냥 일상적으로 하는 읽고 쓰고 말하기와는 달리, ‘잘’ 하는 읽고 쓰고 말하기엔 그만큼 대단한 능력과 자격이 필요한 것 같거든요.
잘 읽고, 잘 쓰고, 잘 말한다?
사실 제 전공은 문예창작학과입니다. 제가 어디 가서 문창과에 다닌다고 말할 때마다 항상 돌아오는 말이 있습니다. “너 글 잘 쓰겠다.” 그럴 때마다 저는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습니다. 문창과에 다니는 제게도 글을 잘 쓰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거든요. 더러는 책을 많이 읽을 테니 좋은 작품을 추천해달라고 부탁받기도 합니다. 그때도 무척이나 난처합니다. 어떤 책이 읽기 좋은지는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자칭타칭 전공자도 자신 없어 하는 마당에, 그럼 잘 읽고, 쓰고, 말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그 질문만큼은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바로 중앙도서관에서 진행되는 독서 캠프에 가보라고 말입니다.
저는 저번 10월 12일 토요일에 ‘독서캠프 - 읽기, 글쓰기, 말하기 워크숍’을 참가했습니다. 아침 아홉 시부터 학교에 오느라 졸려 죽을 맛이었는데, 이런 제 마음을 미리 알아주신 선생님 덕분에 첫 수업은 기체조로 시원하게 몸부터 풀고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기체조를 선보여 주신 선생님께선 무척이나 유쾌한 성격을 가지고 계셨어요. 수업을 진행하는 동안 다들 웃느라 민망할 지경이었습니다. 저는 유연성이라곤 전혀 없는 몸치였지만 선생님의 친절한 지도 아래 나름대로 동작들을 잘 따라 할 수 있었습니다. 한 번 몸을 풀고 나니 삭신이 노골노골 부드러워지고 기분이 상쾌해지더군요. 이 체조로 제 뱃살이 모조리 빠졌다면 좋았겠지만, 그건 제 헛된 바람이겠죠.
10시부터 11시 50분까지는 김민영 선생님의 스피치 강의를 들었습니다. 김민영 선생님의 풍부한 스피치 경험담을 듣고, 스피치 달인의 조건에 대해 알아보는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이때 말씀해주신 스피치 달인의 조건은 총 10가지였습니다. 상대의 말을 경청하기, 중요부분만 요약 정리하기, 정확한 발음과 발성을 구사하고 제스처를 곁들이기, 상대방의 말에 호응해주기, 말의 핵심을 파악하기, 유머와 재치를 겸비하기, 몰입하기 좋은 스토리텔링을 전달하려 노력하기, 청자의 호응을 유도하기, 시간을 지키기, 순서를 바꾸기. 이 많은 것들을 다 가지고 있어야 스피치 달인이 될 수 있다니, 역시 달인이 되는 길은 쉬운 일이 아닌 듯하네요. 수업 뒤엔 스피치를 직접 실습해 볼 수 있었습니다. 네 다섯 명씩 조를 짜서 불꽃 튀는 스피치 경쟁을 벌이느라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어요. 김민영 선생님이 상품으로 책을 걸어두셨는데, 그 책을 차지하려는 학생들의 욕망이 이글이글 불타올랐었거든요. 저는 불행히도 아무런 단 한 권의 책도 건지지 못했습니다.
오후부턴 독서 토론에 대한 강의를 듣고 직접 토론을 체험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처음 해보는 독서토론은 생경한 느낌도 들고 어색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홀로 책을 읽고 나만의 감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읽은 다른 학생들의 의견을 듣고 더 폭넓은 해석을 할 수 있어 얻은 것이 많았습니다. 독서토론은 골방독서에서 광장독서로, 개인의 독서에서 단체의 독서로, 평면적인 독서에서 입체적인 독서로 독자를 이끌어주는 사다리가 된다고 합니다. 독서 토론을 하면서 책에 대한 이해뿐만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이해도 깊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한 책을 보고도 사람마다 이렇게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다니 놀라웠습니다. 좋은 사람들과 만나서 즐겁기도 했고요.
독서토론이 끝난 뒤엔 직접 서평을 써보게 되었습니다. 서평은 아직 그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을 위해 쓰는 글이라고 합니다. 책을 소개하고(책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를 포함하고) 그 책에 대한 제 주관적인 감상을 논리적으로 풀어나가는 글쓰기인 것입니다. 이렇게 쓰인 서평은 다른 사람에게 책을 선택할 수 있는 판단 기준을 제공해준다고 합니다. 매일 작품 창작만 해오다 서평이라는 새로운 글쓰기를 접해보니 신선하고 재밌더라고요. 나름대로 형식을 지키느라 골치가 아프기도 했고요. 서평 쓰기를 지도해주시던 선생님께서 해준 말씀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글쓰기는 자신에게, 타인에게 말을 거는 행위”라는 것. 제가 쓴 서평을 보고 다른 사람들이 제 감상에 공감해 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왠지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 같았습니다.
마지막으로는 미니 북 콘서트의 공연을 관람했습니다. 초대 가수인 제갈 인철 씨의 인생 이야기도 듣고 음악도 감상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제갈 인철 씨는 동명의 원작에서 영감을 받아 <고령화 가족>과 <나는 봉천동에 산다>를 작사 작곡했다고 합니다. 책을 읽지 않아도 노래를 들으면 그 작품의 줄거리와 분위기를 알 수 있게끔 하는 것이 제갈 인철 씨의 소명이라고 합니다. 확실히 책으로만 읽으면 다소 따분하고 딱딱할 수도 있는 내용이, 노래로 들으니 흥미가 돋고 더 몰입되는 느낌이었습니다. 굳이 문학작품과 관련된 노래만이 아니라, 기존의 가요도 함께 불러 주셔서 귀가 호화로운 시간이었습니다.
아침 아홉 시부터 시작해서 오후 여섯 시에 끝난 기나긴 일정. 이 독서 캠프를 통해 좀 더 ‘잘’ 읽고, 쓰고, 말할 수 있는 노하우를 배우게 된 같습니다. 그러나 스피치의 달인만큼 잘 말하고, 독서토론광 오바마 대통령보다 더 잘 읽고, 문학평론가보다 더 잘 쓸 수 있으려면 아직 많은 연습이 필요하겠죠? 한 번으론 부족하니, 다음번에도 이 캠프에 참가하고 싶습니다. 잘 읽고, 쓰고, 말하고 싶으신 분들! 그 분들께 중앙도서관에서 주관하는 독서캠프를 강력히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