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화 옆에서(서양화과 정다인)
“우선, 만나서 밥부터 먹자!”
뜻이 맞는 친구 셋이서 독서 PT대회에 나가기로 한 후 내민 첫 마디였다. 실은 지금 와서 말 하는 거지만 하겠다고 결심하기 까지 많은 고민과 걱정을 떠안고 있었다. 공통 교양으로 들어야 하는 세계 명작 세미나를 다 듣고 나니 책을 읽고 그에 대한 생각을 나눌 기회가 적어 내심 아쉬워하던 참 이었지만 청중 앞에서 발표를 한다는 건 언제나 내게 부담이었기 때문이다. 대학에 입학하고 지금까지 거쳐 온 수많은 수업 속에서 발표를 맡을 기회는 많았지만, 따지자면 굳이 먼저 하겠다고 나서는 타입은 아니었다. 용기내서 신청 할 수 있었던 이유 단한가지는, 이 친구들과 함께라면 나의 재량을 펼칠 수 있으리라는 믿음 하나였다. 북삼매 독서 PT대회는 동국대학교 재학생이라면 누구나 팀을 꾸려 참가가 가능하다. 대학 생활을 하는 동안 보통 우리는 주어진 문제와 정해진 조 안에서 협업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이번 대회는 더욱 나에게 색다르게 다가왔다. 자유롭게 구성된 팀과 선정된 도서로 과연 동국대학교의 학생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 궁금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대회 준비를 시작하기로 했다.
우리가 고른 분야는 “세계 명작 도서” 중 한 권을 골라 우리의 생각을 발표하는 것이었다. 셋 다 세미나 수업을 인상 깊게 듣기도 했었고 아무래도 고를 수 있는 범위가 있다 보니 각자의 책 취향과 성향을 파악하기 쉬웠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독서 PT대회를 위해 그동안 들었던 세미나 수업들을 돌아보니 새삼 마음이 새로웠다. 지난 2년간 생각보다 많은 책을 접했고 또 토론할 기회가 있었는데, 나는 과연 최선을 다해 참여했던가하는 물음이 나를 알 수 없는 죄책감에 들게 했다. 그리고 따라오는 불타는 의지는 본선 진출을 위한 여정에 충분했다.
처음에는, 각자 인상 깊었던 책과 수업을 공유하며 점점 책 한권 쪽으로 의견이 기울어 갔다. 나는 조금 자신 없는 책이었지만 이번 대회라는 목표를 통해서 하나의 지식과 문학을 알아간다는 생각으로 흔쾌히 응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우리는 세 명이라는 팀원들에게 각각의지하며 조언을 구하고, 의견을 주고받으며 사고를 확장시켜나갔다. 지금 돌이켜 보면 하나의 공동의 목적 즉, 독서 PT대회 입상이라는 고지를 향해 노력하는 입장에 서서 자연스럽게 독서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게 된 것 같다. 바쁜 학업생활과 일상에 치이는 와중에 꼬박꼬박 준비해야 했다는 점이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적어도 대회에 참가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변화가 일어 날 것이 확실하다고 말 하고 싶다.
사실 입상은 그 후에 찾아온 또 하나의 행복이었다. 또한 발표를 어려워했던 나에게 기운을 복 돋아 주며 함께 연습하던 나날들이 마냥 어울려 놀던 것과는 또 다른 재미였다. 서로 충고도 하고 혼내기도 하면서, 그리고 격려하며 이끌어나가며 조금은 조별 활동이라는 제도의 장점을 느끼기도 했다. 떨리는 발표 당일, 움츠러든 어깨를 일부러 피고 한 글자 한 글자 그동안 외우고 또 외웠던 나의 대사를 마이크를 통해 청중에게 전달했다. 막상 그 자리에 서니 나를 지켜보고 있는 심사의원들과 학생들의 눈빛이 나를 압도했지만, 잠시 뿐이었고 이내 마음에 평정심을 되찾게 되었다. 이번 독서 PT대회를 통해서 가장 크게 얻어간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용기 내어 선 한 번의 기회로 발표에 대한 공포를 조금이나마 떨칠 수 있었고 친구 사이는 더욱 돈독하게 되었던 것을 답하고 싶다. 나에겐 잊지 못할 추억이었으며 앞으로의 독서 생활에 거름이 될 훌륭한 경험이었던, 자칫 지루할 수 있고 지칠 수도 있는 학교생활 속 특별한 이벤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