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2병’,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폭발하는 시기를 일컫는 말인 ‘중2병’과는 반대로 최근 자신을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며 우울함의 나락으로 빠지곤 하는 대학교 2학년생들의 심리 상태를 일컫는 신조어다. 무더웠던 여름이 지나고 선선한 가을과 함께 찾아오는 한적함과 고독함 때문일까. 시험기간이면 으레 가해지는 정신적 압박 때문일까. 다들 저만치 앞서가는 듯한데 나만 멀리 뒤쳐진 듯한 열등감 때문일까. 2학년 2학기가 시작된 9월부터 나는 나의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자신감도, 흥미도, 조그만 의욕조차도 없었다. 그 어느 누구보다도 자기애와 자존감이 뛰어나고 삶에 대한 욕망과 의욕으로 가득 찼다 자신할 수 있는 나였는데, 웬일인지 어떤 일에도 별다른 재미와 관심이 없었다. 이런 상태로 공부를 하는 둥 마는 둥 시험기간이 지나갔고 나의 대2병은 조금도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 발견한 것이 휴먼북이었다. 우선 주제부터가 나의 시선을 끌었다. ‘욕망’과 ‘주체’와 ‘청년’과 ‘삶’이라니. 잘은 모르겠지만 어쩐지 지금의 내 상황과 딱 맞는 주제처럼 느껴졌다. 거기다 1학년 1학기에 수업에서 뵌 적이 있는, 정말 존경해 마지않던 오태영 교수님이셨다. 앞뒤 잴 것도 없이 참석을 결정했다. ‘대2병’,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폭발하는 시기를 일컫는 말인 ‘중2병’과는 반대로 최근 자신을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며 우울함의 나락으로 빠지곤 하는 대학교 2학년생들의 심리 상태를 일컫는 신조어다
감사하게도 교수님께서는 1년도 훨씬 지나 마주한 제자의 얼굴을 알아봐주셨고 소규모로 진행되었기에 보다 편하게 말씀을 나눌 수 있었다. 마치 아버지처럼, 한편으론 친한 친구처럼 내가 편하게 얘기를 할 수 있게 유도해주신 덕분에 나는 내 마음 한구석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들을 하나씩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꺼내고 머지않아 나의 현 상태에 대한 진단이 나왔다. ‘지쳐서 그런 거네.’ 라는 교수님의 한 마디. 대상이 무엇이 되었든 어떤 방식이었든 나는 대학 입학 후 지난 2년을 열심히 살아왔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신적 포화 상태의 끝에서 나타난 무기력함과 무의욕이 나타나는 시기를, 스스로 타인에 비해 뒤쳐진다 생각하며 나 자신을 괴롭히지 말고 그저 잠시 쉬었다 가라는 말씀이셨다. 요즘 대학생들은 스펙이니 취업이니 하며 너무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혹사시킨다며, 가끔은 머리를 비우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도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하나의 과정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그것이 절대 나쁜 것이 아니라는 말과 함께. 누구나 자신이 속한 집단 속에서 그 집단에서 행해져야 하는 일과 방식을 정상적으로 받아들이기 마련이다. 그리고 간혹 그 범주에서 벗어나는 사람은 가혹한 손가락질을 받곤 한다. 정상이 아니네, 왜 그렇게 사냐, 그럴 시기가 아니다. 하지만 내 옆에서 그런 말을 하는 그 누구도 내 삶을 직접 책임져 주지는 않는다.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그 무기력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보내던 시간 또한 오롯이 나의 것이고 후에 내가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그 시간들의 가치가 결정되는 것이다. 따라서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이상은 살아가며 한 번쯤 내 몸과 마음이 내키는 대로 혹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에 푹 빠져 사는 시간을 가지며 ‘미친놈’이라는 소리를 들어보는 것도 꽤나 멋진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나는 뚜렷한 실체로서 존재하는 꿈과 미래는 없지만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그저 지금 당장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나의 목표로 삼고 그것을 과정삼아 나아가는 것도 썩 괜찮다는 것이다. 그리고 20대는 이런 일을 실천하기에 가장 적합한 시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이런 생각을 나태한 합리화라 비난할 지도 모르겠지만 이제는 그 비난에도 개의치 않으려 한다. 42.195킬로의 마라톤 경기에서 5킬로마다 급수대가 설치되어 있듯 현재 나의 상태도 물을 마시는 구간처럼 조금씩 쉬어가는 과정이라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42.195킬로의 마라톤 경기에서 5킬로마다 급수대가 설치되어 있듯 현재 나의 상태도 물을 마시는 구간처럼 조금씩 쉬어가는 과정이라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다가오는 겨울 방학에는 새로운 도전을 해보려 한다. 대학 입학 전 재수를 하면서도 어느 대학 무슨 과로 목표를 정하던 다른 친구들과 달리 나의 목표는 세계여행이었다. 세계여행을 하려면 우선 영어를 잘하면 좋을 테고 국어를 잘 하면 다른 외국인들에게 우리말을 잘 알려 줄 수 있고, 철학과 사상을 잘 알면 그 나라의 문화를 탐구하는 데 좋을 거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갖다 붙이며 수능 공부를 해온 나였다. 하지만 막상 대학에 들어온 이후론 이렇다 할 제대로 된 여행조차 가지 못했다. 녹록치 않은 현실의 벽이었다기 보단, 홀로 어딘가로 떠나는 것이 두려웠던 것 같다. 휴먼북에 참여한 1시간은 짧았다 할 수 있지만 나의 욕망에 대해 다시금 한번 생각해보고 새로이 무언가를 시작할 용기를 얻은 점에서 정말 가치 있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물론 교수님께선 여기 참석해 있는 시간도 너희에겐 아깝다며, 차라리 밖에 나가 친구들과 술이라도 마실 것을 권하셨지만...) 이번 겨울 방학에는 인도로 여행을 갈 것이다.
이번 겨울 방학에는 인도로 여행을 갈 것이다. 아니, 사실 인도가 아니어도 좋다. 홀로 어딘가로 훌쩍 떠나 온전한 나만의 시간을 갖고서 돌아올 테다. 무기력하던 시간들에서 조금 비켜나 새로운 욕망을 갖게 된 지금, 다가올 시간을 꿈꾸며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알 수 없는 희열이 스물스물 올라오기 시작한다. 살면서 미친놈 소리를 들어보는 것도 괜찮고 멋진 일이 아닐까. 이 글은 오태영교수님의 휴먼북 라이브러리를 참석한 국제통상학과 방시현 학생이 보내준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