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추천

상세 프로파일

서명
설국
저자
가와바타 야스나리
발행처
민음사
발행년도
2002
ISBN
8937460610 

리뷰

정봄비 2014-11-07 추천(0)
설국의 눈은 녹지 않는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은 끊없는 눈내림의 나라다. 쌓이고 쌓여, 밤의 밑바닥마저 하얗게 물들일 나라. 나는 여러 번 이 책을 읽으려 노력했다. 눈이 흩날리는 겨울의 정취와 이상적인 모습으로 머리 속에서 그려지는 게이샤의 모습은 아름다웠지만 통 책을 넘기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몇 번이고 도중에 책을 덮었다. '그래, 상상하게 만드는 책이긴 하다. 하지만 별 재미는 없어.'라는 게 이 책에 대한 나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이였던가, 나는 이 책이 재미가 있든 없든 꼭 마지막까지 봐야겠다고 결심했다. 유명세라는 것은, 그것의 가치에 상관없이 사람을 끌리게 한다. '설국'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볼 가치가 있었지만 말이다.
모든 소설엔 사건이 있다. 이 포근할 것만 같은 설국에서도 사랑과 삶에 방황하는 세 사람이 나온다. 고마코, 시마무라, 그리고 요코. 내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고마코다. 시마무라는 그저 한량일뿐, 제대로 된 각오 없이 유람하는 남자다. 요코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사랑을 만끽하며 죽었다. 모든 것을 잃고 삶을 지탱해주던 것마저 뺏긴 것은 고마코일뿐. 설국의 모든 것을 장악한 눈을 활활 불태울 것 같은 강렬함으로, 붉은 화재로 이야기는 끝난다. 그 불에 죽은 것은 요코, 고마코의 정신, 그리고 시마무라의 어설픈 사랑이었을 것이다. 시마무라는 아마 선택해야 할 것이다. 고마코를 보살피거나, 끝내 그녀를 버리거나. 설국은 삶의 한 풍경이다. 어떤 것도 영원할 수 없음이 점철된 인생...
설국의 글귀들은 아름다웠다. 상상하게 만드는 글귀들이다. 속살거리는 간지러움이 아닌, 온유한 강처럼 제 갈길을 가며 풍경을 자아내는 문체다. 설국이 가진 가장 큰 힘은 분위기다. 설국은 영원히 눈이 내리는 나라다. 영원히, 영원히. 이것이 문학의 힘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