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공모]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
[북 리뷰 공모전] -[경제와 사회] 부문
융합에너지신소재공학과 지동섭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
-장 보드리야르 『소비의 사회』
‘나는 동국대학교 학생이다.’라는 말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이 말은 단순히 대한민국 서울 소재의 불교 대학교에 재학 중이라는 말에 불과할까. 프랑스의 사상가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가 쓴 『소비의 사회』에 따르면, '동국대학교'는 기호가치를 지닌다. ‘동국대학교’를 다닌다는 것은 그저 수많은 대학교 중 한 곳에 다닌다는 의미에 그치지 않고 ‘동국대학교’가 지닌 의미를 소비하는 행위가 된다. 그리고 ‘동국대학교’를 다닌다는 사실 그 자체가 나의 생활방식, 사회적 지위를 대변한다. 우리 사회에 학벌주의가 만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의 출신 학교가 우리가 누구인지 알려준다.
사람들은 소비를 통해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위세를 드러내고, 그 점을 돋보이려 한다. 이러한 현상을 『소비의 사회』에서는 “사회적 차이화”라는 용어로 정리한다. 우리는 기호를 획득하는 ‘소비’라는 활동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차이를 만든다.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의 관점은 상품이 화폐와 교환될 수 있는 지표인 교환가치를 중심으로 이론을 전개했지만, 보드리야르는 상품이 가진 기호를 함께 소비하는 기호가치에 초점을 맞춘다. 보드리야르는 사회 전체를 의미작용의 체계로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사회에서 소비되는 상품 역시도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것이 기호가치의 원리이다. 또한, 잉여의 상품을 생산해내고 그 상품들이 낭비되는 사회에서 사물이 어떤 용도로 쓰일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지표인 사용가치는 무의미해진다. 경제학에서 사용가치가 주목받는 것은 희소성이라는 물자의 부족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사용가치는 경제학에서 설명하는 방식처럼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소비되지만, 기호가치는 상품을 구매하는 자아를 충족시키기 위해 소비된다. 이 점이 사용가치와 기호가치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더불어서 기호가치를 소비하는 행위는 주술적인 경제처럼 보인다.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사물이기 때문에 사물이 아니었던 사상, 지식, 문화 등까지도 의미를 지니기 위해 사물로 바뀐다. 『소비의 사회』에서 이러한 작용을 “물신숭배적 논리가 바로 소비의 이데올로기”라고 표현한다. ‘물상화의 과정’이라는 용어로 설명되는 보드리야르의 해석은 마르크스가 경계했던 지점보다 더 극단적이다. 보드리야르가 바라본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파노플리(panoplie)”라는 용어로 설명되는 물자의 풍부함이 문제가 된다. 이 풍부함의 사회에서는 절약보다 낭비가 우선시된다. 얼마나 낭비할 수 있는가가 그 사람의 능력을 말해준다. 또한, 동일한 사용가치를 지닌 상품들이 가게에 진열되어 있을 때, 소비자가 상품을 구매하는 기준은 상품을 통해 자신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는지에 달렸다. 나아가 소비자는 소비 행위를 통해 행복, 안락함, 성공, 권위 등과 같은 추상적인 의미도 획득할 수 있다고 믿는다. 여기서 파생된 사회학 용어인 ‘파노플리 효과(panoplie effect)’는 이러한 사회 현상을 잘 말해준다. 특정 계층이 소비하는 상품을 우리가 구매했을 때 우리 역시도 그 계층의 일원인 것처럼 느끼는 현상을 일컫는다. 그러나 이러한 소비의 행태가 문제가 되는 것은 상품을 소비하면서 얻게 되는 의미가 소비자 스스로 얻어낸 결과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는 소비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의 차별화, 행복, 안락 등을 얻으려 하지만, 오히려 그것은 상품에 의미를 담아내는 질서에 지배를 받는 활동이 된다. 소비는 자율적인 주체의 자유로운 행동이 아니라 소비와 결부된 욕구의 체계를 발생시키고 관리하는 생산질서와 상품이 표현해주는 사회적 지위와 위세의 가치를 결정해주는 의미작용의 질서의 지배를 받는 활동이다. 또한, 자본주의 사회는 “르시클라주(recyclage)”라는 조작을 통해 계속해서 새로운 기호가 우위를 점하도록 하고, 그 가치를 얻기 위해 소비자가 끊임없이 새로운 상품을 소비하도록 만든다. 즉,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생산 활동과 소비 활동 모두에서 ‘소외’가 일어난다. “르시클라주”라는 조작은 소비자와 노동자 모두에게 작동한다. 우리가 소비자일 때는 재인식 작용을 통해 의미작용의 질서가 상품에 부여한 새로운 의미를 소비하는 행위로 ‘소외’가 발생하며, 노동자일 때는 재교육의 형태로 우리 자신이 노동 시장에서 더 많은 가치를 지닌 상품이 되고자 노력하도록 만든다. ‘물상화의 과정’은 이제 사상과 문화에 작용할 뿐만 아니라 자아 자체에도 작용하여 주체를 소외시킨다.
결국, 보드리야르의 분석은 소비 행위 그 자체가 우리를 소외시키는 활동이 된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렇다면 우리 자신이 진정한 자아, 자율적인 행위를 하는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소비 활동에 변혁을 가할 수밖에 없다. 이 점에 있어서 신자유주의로 인해 가속화된 자본주의 사회를 전복시킬 만한 담론을 제시한 사상가들이 있는데,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과 안토니오 네그리(Antonio Negri), 마이클 하트(Michael Hardt)의 경우가 좋은 예이다. 고진의 경우, 『세계공화국으로』에서 보여준 ‘어소시에이션이즘(associationism)’이라는 개념을 통해 생산과 소비가 함께 이루어지는 공동체 형태를 새롭게 제시하였다. 그는 ‘NAM(New Associationist Movement)’이라는 실천적 운동을 통해 생산·소비협동조합을 조직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변혁은 단순히 경제적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윤리적인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자율적인 행위를 하는 자유로운 주체는 칸트의 윤리학에서 말하는 ‘자유’와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네그리와 하트의 경우, 『제국』, 『다중』, 『공통체』 3부작을 통해 ‘사유 재산’의 개념을 ‘공통적 것(the common)’으로 옮긴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신자유주의의 문제는 ‘공통적 부’를 사유화하려고 했을 때 발생한다. 고진과 네그리, 하트 모두 현대 자본주의를 제국주의의 틀에서 바라보며 공화국을 해체하려 한다. 그들에게는 복지국가도 자본주의의 한 측면에 불과하다. 따라서 현대 자본주의에서 진정한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전혀 새로운 사회를 향해 나아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것만이 진정으로 윤리적인 길, '공동선(common good)'으로 나아가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