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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
멋진 신세계
저자
올더스 헉슬리
발행처
문예출판사
발행년도
1998
ISBN
9788931003581 

리뷰

맹은미 2015-12-03 추천(0)
인간적인 인간이란 무엇인가
처음 든 생각은 ‘대단하다.’였다. 출판 이후 지금까지 끊임없이 회자되며, 명작이라는 수식어를 항상 달고 다니는 『멋진 신세계』는, 가히 그럴 만 했다. 책을 편 순간부터 덮는 순간까지 멋진 신세계의 ‘배양된 인간’이 되어, 야만인이 되어, 총재가 되어, 그리고 독자가, 올더스 헉슬리가 되어 수많은 사고의 폭풍을 경험했다.
포드 632년, 인간은 과학 발달의 혁신에 혁신을 거듭하여 마침내 인간까지 ‘대량생산’하는 세계에 살게 된다. 이렇게 ‘배양된 인간’은 으레 공장에서 제품을 찍어내는 것처럼 개인의 성격과 쓰임새, 취향, 지적 능력, 직업, 삶의 방향 등 시작부터 끝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정해진 인간으로 만들어지게 된다. 모든 인간은 ‘공동, 균등, 안전’이라는 세계 국가의 표어를 기준으로, 서로를 공유하고 질서와 안전을 유지하는 삶을 산다. 그들에게는 이것이 정상적인 삶이고 결혼 제도는 이해할 수 없는 것, 어머니에게서 태어나는 자식은 음탕한 것, 깊은 사고는 쓸모없으며 할 필요가 없는 것들이다. 모든 인간은 진정으로, 진심으로, 본능이 흡족한 행복을 느끼며 이들에겐 죽음조차도 두려운 것이 못 된다. 완벽한 행복, 완벽하게 안정적인 삶! 완벽한 세계이지 않은가?
그런데 우리는 이 세계에 쉽게 호감을 느끼지 못한다. 신세계에 감탄을 하면서도 계속해서 마음 속 깊은 곳에서의 거부감을 느낀다. 왜일까? 우리의 이러한 찝찝한 마음을 대변해주는 존재가 바로 야만인 ‘존’이다. 배양된 인간에게서 ‘태어난’ 존은, 야만인 보존구역에서 성인이 될 때까지 자라고 이후 신세계로 넘어가게 된다. 하지만 그가 상상했던 것과는 달리, 직접 마주한 신세계는 너무나 ‘비인간적인’ 세계이며 ‘인간의 존엄성’이란 찾아볼 수 없는 세계이다. 그는 이러한 신세계에 구역질을 느끼며 종래에는 스스로의 존엄성까지도 흔들림을 느끼고 목숨을 끊게 된다.
인간은 사유하는 존재이며, 고민하고 생각하여 선택할 권리가 있다. 인간은 불행과 고통을 느끼고 이를 통해 성장하며 생각의 깊이를 더하는 존재이다. 인간은 존엄하다. 이것이 야만인 존의 생각이며 또한 신세계에 거부감을 느끼는 우리의 생각이다. 스스로의 자유 의지로서가 아닌 만들어지는 인간이라면, 이는 기계와 다를 바 없다. 따라서 책 속의 ‘멋진 신세계’는 우리에게 전혀 멋지지 않다. 올더스 헉슬리는 완벽한 세계, 흔히 말하는 유토피아를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우리에게 인간으로서의 응당한 거부감을 불러일으키고, 우리가 바라 마지않는 유토피아의 위험성을 강렬하게 경고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나 스스로에게, 올더스 헉슬리에게, 그리고 야만인 존에게 묻고 싶다. 정말로 포드 기원으로 시작되는 이 신세계가 나쁜 것일까? 이 신세계가 멋지지 않다고, 유토피아가 아니라고 진정으로 확신할 수 있을까? 사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이 질문에 ‘그렇다’라고 확실하게 말하지 못한다. 인간의 존엄성을 말하기 이전에, 인간이 느끼는 단순한 ‘행복’이라는 감정의 중요성 또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삶을 살면서 수많은 고민과 고통과 번뇌를 하며 살아간다. 끊임없는 감정의 홍수 속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행복과 불행을 느끼고, 삶이 고통스러울 때는 끝도 없는 절망 속에 빠지기도 한다. 우리의 삶은 절대 행복으로 가득 차 있지 않다. 남과 비교하여 자신을 깎아 내리기도 하고 가지지 못한 것에 집착하여 괴로움을 느낀다. 또한, 우리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누구나 예외 없이 늙고 병들어간다. 정신적인 괴로움은 둘째치더라도, 일차적으로 신체의 고통과 괴로움이 우리를 끊임없이 괴롭힌다. 젊고 활기찬 육체는 시간이 지나고 보면 그저 찰나의 순간과도 같다. 이처럼 인간의 삶 곳곳에는 불행을 느끼게 하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당장 주위를 둘러보아도 그렇다. 취업 걱정에 하루하루 스트레스 받는 친구들, 취업 이후엔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로 골머리를 썩는 직장인들, 자식 걱정에 잠 못 이루는 부모님들, 서로 경쟁하며 남을 헐뜯고 상처 주는 사람들, 몸과 마음이 병들어 그저 하루를 버티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힘든 사람들,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테러범들이나 범죄자들 또한 판을 치는 세상이다. 우리의 삶은 참으로 고행의 길과도 같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행복을 느끼는 것이 이렇게도 어려운 세상이라니, 무엇을 위해 이토록 치열하게 사는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만약 우리에게 ‘멋진 신세계’가 펼쳐진다면 어떨까? 세상 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고 질서를 지키며 안정된 삶을 사는 세계. 계급이 나뉘어져 있지만, 모든 사람이 자신의 계급을 진정으로 사랑하며 만족하는 세계. 고통과 불행은 존재하지 않으며 매일 매일 행복을 느끼고 쾌락을 즐기는 것이 보편적이고 옳은 세계. 다시 말해, 어느 누구도 삶을 비관하지 않으며 괴롭지 않은 ‘누구나 행복한, 멋진 신세계.’
매혹적이다. 매혹적이지 않을 수가 없다. 이가 썩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달콤한 사탕의 유혹에 흔들리는 아이처럼, 우리에게 이러한 멋진 신세계는 참으로 매혹적이다. 하지만 우리는 인간의 존엄성 앞에서 감히 이러한 세계를 옳다고 말할 수 없다. 인간답지 못한 삶이라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가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것 자체를 모르는 존재라면?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거나 우리와는 다르다면 어떨까?
그렇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우리는 인간의 존엄성과 사유하는 인간의 중요성을 알기 때문에 기계화되고 만들어진 인간을 거부한다. 하지만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세계라면 모든 인간이 행복한 세상을 거부할 이유가 없다. 혹은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개념이 쾌락을 추구하는 인간을 말하는 것이라면, 고통과 불행에서 벗어나 심지어는 죽음마저도 불행이 아니게 되는 삶에 한 발 내딛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신세계에서는 인간의 본능마저도 조작할 수 있다. 신체적 특징은 물론이고 계급별로 좋아하는 일이나, 취미, 심지어는 좋아하는 색상까지도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의 계급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만족감을 느끼도록 만들어진다. 그들의 본능은 사유하지 않고 쾌락을 즐기도록 조작되고 모든 것들이 멋진 신세계에 알맞게 만들어져서 살아가는 인간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의 삶을 진정으로 사랑한다. 진정으로 행복해한다. 과연 이들 앞에서도 신세계가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사유하는 인간,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가는 한 인간이 삶에 대한 괴로움으로 절망에 빠져있다. 그리고 만들어진 인간, 신세계에서 쾌락과 행복만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한 인간이 있다. 나는 감히 신세계의 인간이 부럽다고 말하고 싶다. 자신에게 사유하는 인간의 존엄성이 갖춰지지 않았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이 인간은, 진심을 다해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에게 신세계는 참으로 멋지다. 그야말로 멋진 신세계이다.
사실 책 속에서 설정된 신세계가 틈 하나 없이 완벽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는 아니다. 레니나의 실수로 한 인간은 미래에 수면병을 얻게 될 것이고, 버나드같이 계급에 어울리지 않는 신체적 특징과 헬름홀츠같이 의구심을 가진 인간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만약 이런 예외성조차 없는, 그야말로 완벽하다고 말할 수 있는 멋진 신세계가 만들어진다면 나는 그 세계의 사람들을 정말로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멋진 신세계에는 우리가 말하는 인간의 존엄성이 없다. 하지만 그 세계의 인간들에게는, 인간의 존엄성이 아닌 쾌락과 행복만을 추구하는 인간이 ‘인간적’이다. 지극히 인간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그들에게, 지극히 충만하다고 느끼는 그들에게, 우리는 과연 그들의 삶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정봄비 2015-11-20 추천(0)
[북리뷰공모]결정당하는 사회 -'자유'라 불리는 설계된 행동양식-
‘결정 당하는 사회’. 멋진 신세계를 요약한다면 이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다. 타인에 의해 선택이 강요되고 결정되는 책 속의 세상은 지금 우리의 사회와 겹쳐져 보였다.
안일하고 안이한 사회에서 ‘멋진 신세계’의 문명인들은 살아간다. ‘야만인’이라 불리는 이들 외엔 충격을 받을 대상이 없다. 스스로의 존재에 대해 고민하는 것을 다른 게 아닌, 틀린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 속에서 발전은 한 방향으로만 이어진다. 국가가 정해준 행복의 한계 속에서 어항 속 금붕어처럼 살아가는 이들을 보며, 결정권을 가진 삶과 가지지 않는 삶 중 행복한 삶이란 무엇일지 고민했다.
내겐 선택할 수 있는 삶이 더 매력적이었다. 책임을 지더라도, 내가 생각한 대로 이끌어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군가에겐 통제되는 삶이 필요하리란 생각도 들었다. 만약 자기가 바라는 대로 모두 이뤄진다면 그 사람도 스스로 선택하는 삶을 택하겠지만, 성공이 확실하지 않다면 다른 이가 앞장서서 결정해주고 자신을 책임져주길 원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레니나는 버너드의 일반인과 다른 행동에 불안감을 느꼈다. 바다를 바라보자거나 데이트 계획에 대해 조용한 곳에서 이야기하고 싶다는 말에 혼란을 느끼고 소마로 도피했다. 통제되는 삶의 가장 큰 약점은 다른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다. 모든 선택이 정해진 범위 내에서 이뤄져야 하고, 이를 벗어나면 배척당한다. 이는 단순히 옷의 색을 선택하거나 데이트 상대를 고르는 자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내 정체성을 사회가 바라는 틀에 맞춰야 한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심지어 생각의 싹을 잘라버리는 것마저 통용되는 사회의 ‘자유’란 이미 설계된 행동양식에 불과한 것이다.
불행하게 되는 권리를 요구한다는 존의 말을 통해 나는 작가가 선택한 삶을 알 수 있었다.
“저는 불행하게 되는 권리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늙고 추악해지고 성불구가 되는 권리는 말할 것도 없이, 매독과 암에 걸리는 권리를, 기아의 권리를, 이투성이가 되는 권리를, 내일은 어떻게 될까 하고 끊임없이 걱정하는 권리를, 티푸스에 걸리는 권리를, 이루 말할 수 없는 수많은 고통으로 괴로움을 받는 권리를. 나는 이러한 모든 것을 요구합니다.”
불행과 비극은 다르다는 말이 떠올랐다. 불행이 계속된다고 생각할 때 비극이 이뤄진다는 말처럼, 순간순간 불행을 느낀다 하더라도 그 삶이 비극적이라고 할 수 없음을 그의 말을 통해 깨달았다.
정봄비 2014-11-13 추천(0)
신세계의 가축
'멋진 신세계'는 결정당하는 사회다. 다른 일을 할 자유도, 자연에서 한들거리는 바람과 그에 실려오는 꽃향기를 맡을 여유도, 책을 읽고 창조해낼 수 있는 능력도 상실당하는 사회다. '멋진 신세계'의 주민들은 태어나기 전부터 수정 담당부서에 의해 삶이 결정된다. 이것이 진짜 삶인가? 남에 의해 결정되고, 아무것도 스스로 생각해 움직이지 못하는 것을 인간이라 할 수 있는가? 이 신세계의 지배자는 '국민'이라 불리는 가축을 원하는 것 같다. 순종하고, 반항하지 말 것. 국가의 유지와 발전을 위해 정해진대로 움직일 것을 강요하는 지배자는 '야만인'이자 '책'을 읽은 존에게 묻는다.
"당신은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하는군. 늙고 추하고 생식불능이 되는 권리는 말할 필요도 없고, 성병과 암에 걸릴 권리, 먹을 것이 없거나 이들이 들끓을 권리, 매일 자신에게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를 권리, 장티푸스에 걸릴 권리, 고문을 당할 권리도 원한다는 말인가?"
불행과 행복은 종이의 양면과 같다. 다르지만 한 몸인 것이다. 신세계의 주민들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듣고 비웃는다. '사랑 때문에 죽다니, 얼마나 멍청한가!'가 그들의 생각이다. 그러나 감정의 소중함을, 가치를 온전히 느낄 수 없는 자들은 얼마나 비참한가. 신세계의 주민들은 아무도 불행하지 않지만, 아무도 스스로 결정한 행복을 누리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