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공모] 사유에서 물질로
[북 리뷰 공모전] -[자연과 기술] 부문
융합에너지신소재공학과 지동섭
사유에서 물질로
-르네 데카르트 『방법서설』
우리는 너무나 많은 거짓들에 둘러싸여 있다. 일상에서 우리 주위에 약속을 어기는 사람들이 한두 명쯤 있으며, TV를 틀면 매일 같이 사기 행각을 벌인 일당들의 소식이 전해져 온다. 우리 역시도 누군가에게 거짓말 해본 적 있다. 그렇지만 적어도 우리는 자기 자신이 느끼는 감각과 감정에는 솔직한 편이며,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던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여기, 한 세상이 끝나고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던 시기에 모든 것을 의심했던 한 사람이 있다. 신(神)의 뜻에 의지하여 사람들의 신뢰가 지탱되던 시기인 중세가 저물어가고, 사람이 세상의 중심이 되는 근대가 떠오르던 시기에 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가 살았다. 갈릴레이(Galileo Galilei)가 지동설을 주장해 재판을 받던 시기, 성직자들이 이단을 몰아내고 신의 세계를 지키려 했지만, 서서히 새로운 세계의 인간들이 나타나던 시기에 데카르트는 자유로운 국가 네덜란드에서 지내고 있었다. 신에게 선택받은 이들이 사는 지구를 중심으로 만물이 따라 움직이던 시기는 지났다. 인간은 이제 스스로 움직여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 우주에서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새롭게 고려되어야만 했다. 무엇보다 신이 있던 자리, 세계의 근본에 무언가를 놓아야만 했다. 신을 대체할 수 있는 것, 무한의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을 데카르트는 따져보았다. 의심되는 모든 것을 걷어내고 가장 확실한 것만을 세상의 중심에 놓은 후 처음부터 다시 세상을 바라보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데카르트의 고민이 끝나는 지점에서 저 유명한 말이 떠올랐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데카르트 철학의 특이한 점은 사유에서 시작해서 물질로 끝난다는 점이다.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는 근본적으로 진리를 찾기 위한 시도이다. 데카르트는 수학을 다른 모든 지식 체계 위에 있는 진리의 본질이라고 생각했다. 사유는 기하학을 탐구하듯이 확실하고 단순한 개념에서 시작한다. 이러한 진리에 대한 인식은 불확실한 감각에 의지하지 않으며, 오직 오성(悟性)에만 근거한다. 즉, 데카르트에게 자연을 지배하는 질서는 수학적으로 탐구할 수 있는 영역에 있다. 그가 모든 감각적인 지식을 걷어내고 얻어낸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라는 문장은 논리적으로 분석 가능한 문장이다. 그리고 이 문장을 통해 데카르트의 철학은 사유에서 존재로 옮겨간다. 이제 존재는 자신의 내면에서 시작하여 바깥으로 전개된다. 여기에는 의심스러운 감각이 끼어들 틈이 없다. 존재는 곧 ‘순수사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유를 가능케 하는 무한의 관념이 신이다. 데카르트 철학이 근대 철학의 시작인 동시에 한계인 지점은 여기에 있다. 신에서 나의 존재가 파생된 것이 아니라 나의 존재를 통해 신을 확인한 것이다. 그러나 신에 관하여 이야기한다는 점은 때로 데카르트 철학의 한계, 혹은 데카르트의 조심성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러한 신의 완벽한 지성이 ‘위대한 설계’를 통해 우주를 만들어냈고, 우리는 사유를 통해 물질을 이해할 수 있다. 데카르트의 기계론은 여기서 비롯된다. 우주의 질서를 감각이 아닌 오성을 통해 인식하는 것이다. 자연의 법칙을 수학 법칙을 탐구하듯이 밝혀낼 수 있다는 것이 데카르트의 생각이었다. 따라서 데카르트의 탐구 방식은 연역법이다.
『방법서설』을 시작으로 『제1 철학에 대한 성찰』, 『정념론』에 이르기까지 데카르트 저작들을 관통하고 있는 방법적 회의는 이제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것이 되었다. 과학 지식이 중요해진 현대에 확실성이야말로 진리 탐구의 중요한 척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확실성을 향한 탐구는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의 철학을 활용한 ‘빈 학파’의 논리실증주의에서 칼 포퍼(Karl Popper)의 ‘반증주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도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수학적으로 증명 불가능한 명제가 있음을 밝힌 쿠르트 괴델(Kurt Gödel)의 ‘불완전성 정리’로 인해 데카르트 철학의 근본은 흔들리게 되었다. 또한, 데카르트 철학에서 사유가 곧 존재인 지점은 앨런 튜링(Alan Turing)의 ‘튜링 테스트’로 인해 인공지능을 존재자로 인정할 것인가의 문제를 남기게 되었다. 이러한 데카르트 철학의 한계와 함께 확실성을 향한 탐구의 끝은 어쩌면 ‘말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