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공모] 신화의 힘을 읽고
[북리뷰공모] 신화의 힘을 읽고
신화를 통해 나아갈 길을 찾다
이 책을 고른 이유는 ‘신화의 힘’이라는 제목 때문이다. 전공의 특성상 고전문학과목에서 설화와 관련하여 건국신화, 성씨시조신화, 종교 신화 등과 같이 범위를 구분하고 이에 속한 ‘신화’를 간단하지만 읽을 기회가 있다. 그렇지만 수업 시간에 다루는 하나의 텍스트로만 보아서였을까 공동체의 정신을 하나로 묶으려는 정치적 수단 외에 ‘신화의 힘’이 무엇이 있는지 발견하지 못했고, 심지어 다른 힘이 있을 것이라는 의문을 품지도 않았다. 그저 비합리적인 내용을 담고 있기에 이성의 힘이 약했던 고대의 사람들, 좀 더 양보해서 중세 사람들에게까지만 통용될 수 있는, 현대와는 동떨어진, 이제는 사라진 하나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이 책은 간단한 제목을 통해 단순하지만 명료하게 신화가 어떠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당당히 말하는 것 같아서, 두께가 꽤 되는 페이지에 과연 어떤 내용이 담겨있을까 궁금했고, 그래서 이 책을 들었다.
특이하게도 그냥 줄글로 된 설명문 형식이 아니라, 비교신화학자인 조셉 캠벨과 저널리스트 빌 모이어스가 나눈 tv의 대담을 책에 옮겨놓은 것이었다. 정리된 내용을 하나씩 전개하는 것이 아니라 대화를 옮긴 것이기에, 처음에는 대담자들이 전달하려는 의미와 내용이 일관되지 않아보였고 그 순간의 흐름대로 내용이 바뀌어서 이들이 말하는 의미를 이해하고 집중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뒤로 갈수록 오히려 대화 형식이었기에 편하게 듣는다는 느낌으로 읽을 수 있었고 특정 개념이 반복될 때는 해당 개념의 의미를 내 나름대로 좀 더 정교하게 만들어가며 이해할 수 있었다. 또 내가 궁금해 하는 것을 모이어스가 대신 물어주는 대목을 몇 번 발견하면서 나 또한 대담의 참여자가 된 듯한 진귀한 경험도 할 수 있었다.
8개의 챕터로 목차가 나뉘어져있고, 이 둘이 대담을 나누면서 또는 책을 출간하게 되면서 나와 같은 독자를 배려했던 것일까 친절하게도 첫 챕터에서부터 현대 세계를 살고 있는 우리가 신화에 관심을 두어야 하는 이유를 말한다. 그리고 나머지 챕터에서는 이렇게 첫 챕터에서 주장한 신화의 필요성을 입증하려는 듯 여러 신화들의 이야기나 신화의 세계 속에 살던 사람들의 사례를 들면서 주장에 대한 타당성을 갖추어나간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신화는 현대에도 힘을 갖고 있었다. 현대의 사람들도 고대나 중세의 사람들처럼, 탄생이라는 시작과 죽음이라는 끝 사이를 채우며 살아간다. 캠벨이 말하는 신화의 힘은 ‘살아가는 경험’이기에 살아있는 사람들은 신화의 테두리 밖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놀라운 건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번쯤은 고민해봤을 문제의 답을 신화가 제시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회의 문제이기도 하면서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다. 추상적일 수도 있으며 개인의 문제로 좁힐수록 구체화될 수 있다. 이는 ‘나는 어른일까? 아직 어른이 되지 않은 것 같다. 언제 어른이 될 수 있을까?’와 같이 항상 내가 고민하고 친구들과 나누는 문제이다. 어떤 한 지점에서 신체적 성숙과 같이 정신적 성숙도 이루어진다면 세상을 살아가면서 갖게 되는 고민의 대부분이 사라질 텐데 말이다. 신화의 세계에서는 할례나 명상, 그 밖의 입문 의례가 존재하며 이를 거치면 입문자는 더 이상 어린이의 몸이 아니다. 이뿐만 아니라 신화에서는 개인적인 꿈이 세계의 꿈과 조화를 이룬다. 원초적인 경험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확실히 알고 행할 수 있다. 새로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가치보다는 영원한 가치를 알고 따를 수 있다. 그러나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신화의 세계를 경험할 시간이 없기에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상태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모르는 삶을 살아가며 그 가운데서 방황하는 것이다. 이를 꿰뚫어본 캠벨은 한 사회에서 한 개인이 자신의 몫을 해나가며 살 수 있으면 신화가 필요 없으나 그렇지 못하므로 신화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비합리적이라고 여겨졌던 신화의 내용소들은 은유와 메타포로 보고 해석해야했던 것이고, 어떤 구체적인 것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기에 사람들이 보고 자신의 상황에 맞게 재해석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는 것 같다. 또한 신화는 공동의 꿈이기에 개인적인 체험이 될 수 있으며 개인적으로 체험하게 되더라도 사회적으로 확대할 수 있다. 결국 그 끝은 본질과 원형에 이르게 될 것이다. 하나의 예로 정신분석자에게 치료를 받는 한 여자가 자신의 상황을 그림으로 그리라고 하니 물 속에 잠긴 자신의 몸과 배경으로 바위를 그렸으나 그 뒤에 그림을 그리라고 하니 깨어진 바위와 그 바위 위에 금빛가루를 그렸다. 정신분석가는 신화의 원형을 통해 그 전의 그림은 용이 스스로의 재물을 자신에게 가두어 두듯이 그 여자 역시 스스로를 가둔 모습을 그린 것을 알 수 있었고, 그 후 그림은 스스로의 문제를 인식하고 가두어 둔 것을 풂으로써 내면 속의 갈등이 해결된 것을 그린 것이었다. 또 다른 예로 향연에 나오는 아리스토파네스가 말하는 그리스의 전설로, 원래 사람은 남자와 남자 또는 남자와 여자 또는 여자와 여자가 합쳐진 몸이었으나 그 둘이 갈라지면서 사람들은 태초에 갈라진 서로의 짝을 찾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사랑이 중요한 가치가 있음과 사람들이 자신의 사랑하는 상대를 삶 동안 찾는 모습을 설명해준다.
물론 신화를 해석하는 것을 일반 사람들이 처음부터 가능할리 없고 공부가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신화를 만들어내는 것 역시 일반 사람들이 하기엔 힘든 일이다. 켐벨에 따르면 오늘날 이러한 역할을 하는 사람은 예술가들이라 한다. 그러한 내적 체험을 할 수 있는 힘이 없는 보통의 일반 사람들을 위한 방법으로 어떤 것이 있는지 묻는 모이어스의 물음에 캠벨은 책을 많이 읽어서 일정한 관점을 가지고 그 관점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고 대답한다. 책을 많이 읽으라는 대답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고정적이고 보편적으로 여겨지는 답변이지만 동시에 이보다 현명한 답은 없다고 생각했다. 이 책을 통해서 신화가 우리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어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고 신화의 또 다른 가치를 알게 되어 좋았다. 그리고 신화나 신화가 아니더라도 우리의 삶을 담고 있는 책을 읽고 나의 관점을 획득하여, 사회에서 한 개인으로서의 한 몫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 번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