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드림 : 달콤한 환상 속에 숨겨진 차가운 사회
1930년대 경제대공황과 맞물려, 작품의 배경인 미국은 흔히 ‘아메리칸 드림’이 만연한 시기였다. 누구나 노력하면, 누구나 원하는 삶을, 누구나 원하는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은 사람들을 희망에 부풀게 했고 행복한 삶을 꿈꾸게 만들었다. ‘윌리 로만’도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이들 중 하나였다.
윌리 로만의 아메리칸 드림은 ‘세일즈맨으로서의 성공한 삶’이었다. 그는 세일즈맨으로 성공해 그의 가족들과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싶었다. 또한 그는 일전에 보았던 한 유명한 세일즈맨의 장례식처럼, 자신의 장례식도 그간 쌓아온 인맥들의 조문이 끊이지 않는 자리가 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는 회사에서 해고를 당해 세일즈맨으로서의 일자리를 잃게 되었고, 그의 장례식 또한 너무나 쓸쓸했다. 그가 바랐던 아메리칸 드림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메리칸 드림에서는, 성공하지 못한 이들은 노력하지 않은 사람이다. 노력했다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는 이 사회에서 성공하지 못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윌리 로만은 어떨까? 평생을 성공하기 위해,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던 그는 세일즈맨으로서 성공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노력이 부족했던 것이라고 평가받아야 할까? 세일즈맨으로서 성공하지 못한 윌리 로만은 가치 없는 인간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우리는 그렇지 않다고 말해야 한다.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환상적인 세계는 사실 알고 보면 환상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 세계는 주장하는 것처럼 누구나 노력하면 꿈을 이룰 수 있는 세계가 아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한계를 뛰어넘지 못할 수 있고, 누구나가 다 유명한 세일즈맨이 될 수도 없다. 유명한 세일즈맨이 되는 것은 극히 일부이며, 부자가 되는 사람들 또한 일부의 사람들이다. 그런데 아메리칸 드림은, 마치 그 일부의 사람들이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사람들 전부의 미래인 것처럼 광고함으로써 사람들을 현혹시킨다. 너무나 행복한 결과가 당연히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그러나 오히려 당연한 것은 누구나 다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윌리 로만처럼 실패하는 사람도 당연히 있다. 외려 실패하는 사람이 훨씬 많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메리칸 드림에 빠져있는 사람들, 그리고 사회는 윌리 로만을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두지 않는다. 실패자를 ‘패배자’로, ‘당연한 성공’을 거두지 못한 게으름뱅이로, 인정받을 수 없고 가치 없는 사람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것이다.
윌리 로만은 말했다.
“우습지 않아? 고속도로 여행, 기차여행, 수많은 약속, 오랜 세월, 그런 것들 다 거쳐서 결국엔 사는 것 보다 죽는 게 더 가치 있는 인생이 되었으니 말이야.”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지 못한 그에게 남아있는 그 자신의 가치는, 사망 보험금을 얻어 가족들에게 돈을 남기는 것뿐이었다. 이렇게 해서라도 그는 쓸모 있는 인간, 가치 있는 인간이 되고자 했다. 아메리칸 드림이 속삭이는 달콤한 희망을 뿌리치지 못했던 윌리 로만은 마지막까지 그 사회의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사실 가치 없는 인간이 아닌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희망고문의 희생자일 뿐이었다.
인간의 가치가 인간으로서가 아닌, 사회적 성공을 기준으로 측정되는 사회. 희망차고 아름다운 이상을 내세워 인간을 인간답지 못한 사회로 내모는 아메리칸 드림은, 사실 너무나 폭력적이고 차가웠다.
윌리 로만은 죽기 직전 마당에 씨앗 하나를 심으며 말한다.
“당장 씨앗이 있어야겠어. 심은 게 없단 말이야. 마당에 아무것도 없거든.”
평생 성공의 희망을 쫓으며 살아 온 그이지만 결국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무언가를 남기려면 씨앗이라도 심어야 했다. 무언가를 남기려면 그는 그 스스로의 목숨이라도 희생해야 했다.
이 작품의 배경인 1930년대를 훨씬 넘어 우리는 지금 2015년을 살아가고 있다. 21세기인 지금 대부분의 우리는 계급 사회도 아닌 곳, 그 옛날 왕족 사회나 노비도 없는 곳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이 작품은 오랜 세월을 지나 지금까지도 역시 세계 명작으로 손꼽히며 많은 이들의 찬사를 받고 있다.
실상은 외롭고 차디차지만 너무나 달콤한 환상으로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아메리칸 드림, 그리고 이에 고통 받는 윌리 로만. 이 작품이 지금도 이토록 사랑받는 이유는, 자본주의를 주장하며 빈익빈 부익부를 만들어내는 우리 사회가, 금수저·흙수저 라는 웃지 못 할 이름으로 스스로를 자조하는 우리들의 모습이 바로 이 작품과 닮아있기 때문 아닐까. 아메리칸 드림과 너무나도 닮아있는 지금 사회에서, 우리 모두는 제 2의, 제3의 윌리 로만을 만들지 않기 위해 사회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해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