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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 프로파일

서명
삼국유사
저자
일연
발행처
민음사
발행년도
2007
ISBN
9788937425943 

리뷰

윤채은 2015-11-29 추천(0)
[북리뷰 공모] 삼국유사를 통한 여행
여행은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지혜를 길러주고 삶의 질을 높여주는, 인생의 선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일연의 『삼국유사』는 재미와 삶의 지혜를 고루 맛볼 수 있는 알짜배기 여행과 같은 책이었다. 『삼국유사』를 읽는 동안 나는 마치 다른 세계로 여행을 온 것 같았는데, 딱딱하다고 생각하기 쉬운 역사가 생생하게 피부로 와 닿았고,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내 머릿속의 스크린에 투영되어 지루할 틈이 없었다. 이 책은 고려 후기의 승려였던 ‘일연’이 고대에서부터 통일신라에 이르기까지 전해지는 신화와 전설을 포함한 다양한 이야기를 모아 정리한 사찬 역사서이다. 총 「왕력」-「기이」-「흥법」-「탑상」-「의해」-「신주」-「감통」-「피은」-「효선」까지 9가지 편으로 구성되어 있고, 「왕력」편에서 삼국의 왕조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다면 「기이」편에서는 고조선을 비롯한 삼국의 왕들과 주변 인물들이 기이하게 들릴지도 모르는 사건들을 마주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가 익숙히 알고 있는 단군신화 또한 「기이」편에 수록됨으로써 처음으로 문서상에 기록되었다는 점에서 삼국유사는 사료적 가치가 매우 큰 역사서로 평가받기도 한다. 「흥법」편부터 「효선」편까지는 불교문화사적인 관점으로 신라에서 꽃을 피웠던 불교와 그에 관련된 고적, 고승, 불교신자들에 대해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마지막 「효선」편 같은 경우에는 효심어린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보여주면서 ‘참된 효도’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해보도록 메시지를 남기고 있는 듯 했다.
개인적으로 「탑상」편의 ‘노힐부득과 달달박박’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데, 함께 백월산에서 수행을 하던 둘에게 어느 날 밤 임신을 한 아리따운 여성이 하룻밤 머물 것을 청하며 찾아온다. 달달박박은 절은 깨끗해야하는 곳이라며 단호하게 거절한 반면, 노힐부득은 여자의 처지를 헤아려 하룻밤 묵고 갈 것을 허락하고 밤새 벽을 보며 염불을 외운다. 한밤중에 여자는 아이를 낳았고, 노힐부득은 항아리 욕조를 마련해 애처로운 마음으로 여자를 정성스레 씻겨 주니, 욕조 안의 물이 향기를 가득 피우면서 금빛의 즙으로 변하였다. 여자는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을 시험하러 온 관음보살이었던 것이다. 다음 날, 친구가 계를 더럽혔을 것이라 생각해 놀리러 왔던 달달박박은 미륵불이 되어 앉아있는 노힐부득을 보며 반성하고 함께 성불하게 된다. 관음보살은 수행자로서 칼 같이 계율을 지켰던 달달박박과 달리 중생의 처지를 헤아려 참 보살행을 행했던 노힐부득의 마음을 더 높이 샀던 것이다. 불교설화라고 하면 굉장히 난해하고 어려운 이야기를 함축하고 있을 것 같았는데 이 이야기는 이름부터 특이한 두 인물과 야릇한 분위기를 상상하게 만드는 아리따운 여인의 방문이라는 요소가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내가 수행승이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라는 고민도 해 보면서 무척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일연은 이 일화를 통해 수행자라면 반드시 계율을 잘 지켜 초심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오히려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중생을 살피는 자비로운 마음이 우선이라며 재치있게 독자에게 새로운 각도에서 생각해 볼 만한 문제를 던고 있는 것 같았다.
『삼국유사』는 저자인 일연이 승려의 신분이었기에 자칫 불교사 쪽으로만 치중될 수 있는 위험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이야기를 쉽고 의미 있게 잘 풀어나갔기에 읽는 내내 굉장히 즐거웠고, 마치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덧붙여 괴력난신(怪力亂神)이라고 하여 『삼국사기』에서는 싣지 않았던 기이한 이야기들을 실어 풍부한 상상력을 자극하고, 14수의 향가를 수록해 우리나라 고대 시가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게 하였다는 점에서 문학과 예술을 넘나드는 역사서로 다가왔다. 독서는 한 권의 책으로 어디든 공짜로 여행을 다녀올 수 있는 아주 좋은 수단인 것 같다. 만약 고대국가 속 왕들의 비밀스런 모습을 엿보고 싶다면, 나아가 불교의 꽃, 천 년의 고도 신라로 기억에 남을 여행을 떠나고 싶다면 『삼국유사』를 선택하길 바란다. 아마 유익하고 다채로운 경험을 선사할 매력적인 여행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