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바닥을 보다
고등학교 때 국어교과서에서 '1984'의 발췌된 글을 읽고 꼭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조지 오웰과 1984, 이 두 단어는 듣기만 해도 중압감을 느끼게 한다. '멋진 신세계'처럼 사람들의 경계를 꾀하는 책이라서 그런 것일까, 나는 이 책을 읽기 전부터 비참한 결말이 다가올 거란 느낌이 들었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인상깊었고, 슬프게 느꼈던 것은 윈스턴과 줄리아의 변화였다. 감정과 사상, 더 나아가 개인의 성욕마저 통제하는 절대주의 국가 오세아니아에서 그 둘은 갈기갈기 찢긴 자유를 방패삼아 은밀한 사랑을 나눈다. 억압의 상징인 빅브라더를 자유로이 비판하며 애정을 속삭이던 그 둘은 모든 것이 발각되자 완전히 달라져버렸다.
굶주린 쥐들이 담긴 상자를 윈스턴의 얼굴에 가져다대자 그가 한 말이 모든 것을 보여준다.
" 줄리아한테 하세요! 줄리아한테! 제게 하지 말고 줄리아한테 하세요! 그 여자한테 무슨 짓을 하든 상관없어요. 얼굴을 갈기갈기 찢어도, 살갗을 벗겨 뼈를 발라내도 말예요. 저는 안 돼요! 줄리아한테 하세요! 저는 안 됩니다. "
간수에게 붙잡혀 서로를 무심히 스쳐지나가던 윈스턴과 줄리아는 서로에게서 과거의 애정어린 눈빛을 떠올릴 수 있었을까?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위해 목숨까지 바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끝이 보이지 않는 고통과 치욕이 기다리고 있다면 어떨까.
윈스턴은 그가 봐왔던, 빅브라더에게 저항한 이들처럼 죽어갔다. 윈스턴의 외침은 '인간'의 죽음이었다. 인간의 바닥까지 떨어진 모습을 낱낱이 보이며 죽어가야 했던 '자유'의 죽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