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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
무슨 꽃으로 문지르는 가슴이기에 나는 이리도 살고 싶은가: 미당 서정주 대표시 100선
저자
서정주
발행처
은행나무
발행년도
2014
ISBN
9788956607597 

리뷰

김도현 2015-11-30 추천(0)
[북리뷰공모] 『총, 균, 쇠』를 읽고
1. 『총, 균, 쇠』에 대하여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책『총, 균, 쇠』1998년 출간을 시작으로 2015년이 된 지금까지 꾸준히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는『총, 균, 쇠』를 집필 한 뒤 과학자에게 최고의 상이라고 할 수 있는 Pulitzer 상을 수상하는 영예까지 누리게 되었다. 특히 한국에서는 ‘서울대학교 학생이 가장 많이 대출한 책’으로 수년 간 각 종 미디어에서 다루며 꼭 읽어봐야 할 책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또한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한글 예찬이 담겨있는 증보편이 출간 되었을 때는 또다시 큰 영향을 일으켰다. 『총, 균, 쇠』는 각 대륙 간의 문명 발전의 차이를 기존의 다양한 학자들이 주장한 개인의 영향, 문화의 차이 혹은 정치적 차이 탓으로 돌리지 않고 ‘환경적 요인’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은 과거의 인종주의적 관점에 얽매여 있던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문을 열어 주었다.

2. 『총, 균, 쇠』를 읽으며

나는『총, 균, 쇠』를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물론 대륙 간의 문명 차이가 인종의 차이에 의하여 일어났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저 막연하게 우연한 계기로 인한 것이라고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내가 가지고 있던 궁금증을 하나씩 해소 할 수 있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주장을 간략하게 정리해 보면, 초기 인류는 주로 수렵 채집생활을 이어가다 우연한 작물화를 계기로 정착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이 집단은 수렵 채집생활 보다는 정착생활을 이어가는 편이 훨씬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자연적인 선택이든 인위적인 선택이든 초기 야생 식물은 작물화 되어 잉여 생산을 가능하게 한다. 더불어 야생 동물의 가축화가 일어나며 잉여생산물이 더 빠르게 늘어나게 되었다. 그 결과 잉여생산물은 노동을 하지 않고 생활을 하는 전문가 집단을 부양 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었으며 비로소 정치적 집단으로 거듭난다. 이 과정에서 기술이 발달하게 된다. 이런 정착생활을 지속하다 보니 자연적으로 인구가 증가하게 되고 더 넓은 땅이 필요하게 된다. 따라서 전에는 그저 복수의 개념이었던 전쟁이 이제는 영토를 넓히는 의미로 확장 된다. 전쟁 혹은 침략을 시작한 이 집단은 작물화나 가축화를 이루지 못한 집단보다 기술적으로 앞서 유리한 위치를 가지게 된다. 게다가 이들은 과거 가축화를 하며 축적된 오물에서 발생한 병원균으로부터 몸에 항체를 먼저 갖추어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빠른 문명화를 맛보게 된다.

『총, 균, 쇠』를 읽으며 저자가 제시한 몇몇 논증은 아주 설득력 있으면서도 흥미로워 나의 궁금증을 유발하였다. 첫 번째로 야생식물의 작물화 또는 야생동물의 가축화가 가능했던 것은 아주 우연적인 사건이었으며. 본디 한 지역에 작물화 또는 가축화에 적합한 개체가 있었던 것뿐이라는 것이다. 식물은 원래 다른 동물에게 먹히거나 털에 붙어 번식을 호시탐탐 노려왔다. 그런데 어떠한 연유로 번식이 어려워지게 되자 인간에게 알맞은 형태로 진화하여 번식을 꾀했다는 것이다. 자연앞에서 인간은 그저 많은 동물들 중 하나로 번식의 도구로 사용되었다는 점이 아주 흥미롭기도 하면서 굴욕적인 느낌을 들게 하였다. 예를 들면 열심히 한 집단이 사과에서 씨를 얻어 땅에 심고 그 열매를 가족과 나누어 먹고 생사를 이어갔던 것은 사실은 사과의 꾀에 넘어가 열매의 번식 도구로 이용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가축화 또한 아주 예민하고 까다로워 힘들었지만 후에 가능해 진 것도. 순전히 그 지역에 가축화에 적절한 개체가 살고 있었기 때문이라니 놀라운 주장이 아닐 수 없다. 또한 그 과정을 설명하며 ‘안나카레나의 법칙’을 사용한 것은 독자를 쉽게 이해 할 수 있게 하는 재미있는 장치였다.

두 번째로 눈에 띄었던 점은 중국에 대한 저자의 주장이다. 『총, 균, 쇠』를 읽다보니 나는 왜 중국도 유럽만큼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문명 발전의 차이가 크게 났던 것일까? 라는 물음이 들었다. 어떻게 보면 중국은 과거 유럽보다 더 훌륭한 자원과 그와 비등한 넓은 면적의 영토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다이아몬드에 따르면 14세기를 시작으로 중국이 정치적 통일이 일어났으며 이것이 후기에 문명 발전에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중국의 정치적 통일이 가능한 배경은 바로 지리적 요인에 있다. 즉, 중국의 만성적 통일 또한 환경적 요인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중국은 유럽과 달리 완곡한 해안선을 가지고 있으며, 내부적 요인이 큰 방해물이 되지 않는다. 한 편 유럽은 구불구불한 해안선과 알프스 산맥과 같은 거친 장애물들이 통일을 제한한다는 것이다. 비록 내부 장애물이 정치적 활동은 막았을 지라도 문화 또는 기술의 이전까지 막지는 못했다.

3. 『총, 균, 쇠』그리고 저자에 대한 비판

물론 『총, 균, 쇠』가 훌륭한 책인 것은 사실이고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논증의 방식이 분명 공격하기 어려울 만큼 탄탄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없다. 그러나 책을 읽으며 드는 궁금증을 조사하다보니 생각보다 다이아몬드의 주장에는 허점이 많았다.

첫째, 그가 가지고 있는 아시아 국가에 대한 정보는 아주 잘못된 것이다. 혹은 자신의 의도에 맞게 해석된 것이다. 이 부분은 내가 가장 비판하고 싶은 부분이기도 하다.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총, 균, 쇠』에서 총 두 장에 걸쳐 중국을 언급한다. 제 16장에서 동북아시아 내에서 중국이 가장 혁신적인 문물을 발전시킬 수 있었던 이유를, 에필로그에서는 중국이 유럽보다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도 유럽에 추월당한 이유를 설명한다. 그의 설명은 아주 그럴싸해 보인다. 그러나 그가 제시한 근거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가 가진 중국역사에 대한 지식은 아주 얕으며 잘못된 것을 알 수 있다.

다이아몬드는 중국은 모두 동일하거나 매우 유사한 언어와 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중국에서는 총 55개의 소수민족이 존재하며 소수민족이 사용하는 언어만 총88개다. 물론 언어체계만 놓고 본다면 유사한 언어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렇다면 과연 비슷한 언어체계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빠르게 언어 전파가 가능하며 의사소통이 가능한 것인가. 물론 아니다. 예를 들어 상해어(上海语)를 사용하는 상해사람이 거리상 6시간 떨어진 남부의 해안도시인 온주(温州)를 방문했다고 가정하자, 과연 상해사람과 온주 주민이 의사소통이 가능했을까? 중국인들은 상해어(上海语)와 온주어(温州语)의 차이는 일본어와 한국어 정도의 차이라고 표현하며 외국어를 사용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설명한다. 도대체 그가 말하는 비슷한 문화란 무엇일까? 만약 문화교환이 이루어졌다고 해서 비슷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속단할 수 있을까? 게다가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중국에는 지리적 이점을 언급하며 동서로 흐르는 두 강이 '운하'로 연결되어 남북 방향의 교환이 쉬웠고 따라서 언어 전파 및 문화의 통일이 가능했다는 것을 환경적 요인으로 쓰는 듯하다. 그러나 '운하'는 어디까지나 인위적인 장치이다.

또한 앞서 말한 중국의 만성적 통일과 유럽의 만성적 분열이 지리적 차이 때문이라는 주장은 잘못 된 주장이다. 그러나 중국의 통일과 유럽의 분열은 다이아몬드가 말한 사실과 다르다. 그가 제시한 들쭉날쭉한 해안선은 남유럽에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다루는 역사상의 흐름들은 유럽의 마지막 500년의 역사를 말하며 이 기간에 일어난 변화들 중 그의 논증을 뒷받침해주는 일들은 대부분 평평한 북서유럽에서 일어났다. 제임스 M. 블로트 저 박광식 엮, 『역사학의 함정 유럽중심주의를 비판한다』, 푸른숲, 2008 p342
프랑스에서 스페인 국경에까지 평원인 것이 그렇고 잉글랜드 남부가 그렇다. 들쭉날쭉한 하다고 말하는 해안선은 뭍으로 깊이 휘어들어가는 곳이 없고 인구분포 또한 고립은 찾아보기 힘들고 핵심 지들의 발달이라는 것도 아주 발전했다고 말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중국이 단일적 통일되어서 무역이 끊겼다고 생각하는 것은 대단한 착각이다. 물론 1405~1433 일곱 차례 있었지만 정치적 착오에 부딪쳐 중단 되었던 일이 있었을 수는 있다. 그러나 다이아몬드의 말처럼 그 기간을 기준으로 중국이 완전히 통일되어 무역, 기술발전 시장제도의 발달이 멈추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유럽은 18세기가 되기 전까지 기술이나 시장 제도의 발달 그리고 보편적인 생활수준에 이르기까지 앞지른 것이 하나도 없었다. 제임스 M. 블로트 저 박광식 엮, 『역사학의 함정 유럽중심주의를 비판한다』, 푸른숲, 2008 p344
18세기에는 청나라는 무역을 통해 경제적으로 아주 행복한 시대를 살고 있었다. 중국에는 유럽에서 간절히 원하는 차, 실크. 그리고 도자기가 부족함이 없었던 상황이었다. 반대로 당시 유럽은 무역적자로 허덕이며 중국에 더 많은 공급을 바라는 입장이었다. 게다가 중국의 남해원정은 사실 조선소나 부두의 목적은 무역목적보다는 조공을 용이하게 만들기 위해 세운 것에 가깝다. 다이아몬드가 『총, 균, 쇠』를 쓰기 전에 과연 중국에 대한 조사를 제대로 행한 것이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이다.

둘째, 비옥한 초승달 지대가 가장 먼저 작물화가 되었다는 주장은 근거가 부족하다.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가장먼저 작물화, 가축화가 진행되었을 것이며 이것은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환경적 요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가설을 고고학적으로 확증하는 것은 현재로서 매우 힘들다. 많은 전문가들도 비옥한 초승달이 가장 이른 농경지라고 예상하는 한편 초기 농경지로 여겨지는 다른 후보들도 충분한 자격을 갖추고 있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게다가 다습한 열대지역에서는 농경생활이 얼마나 일찍 일어나는지 고고학으로 알아내기는 힘들다. 식물의 흔적이나 다른 유기체는 따뜻한 기후에서 잘 보존되지 않으며 그 지역의 환경변화 때문에 가늠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재 해안지역으로 바뀐 동남아시아의 순다 대륙붕지역은 7000년 전에는 마른 평원이었다. 해수면이 올라가기 전까지는 초기 주요 농경지 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비옥한 초승달 지대가 가장 이른 농경지가 맞는지 알 수 없다.

또한 작물화가 시작된 과정이나 가축화에 대해 과학적 설명이 부족함으로 다이아몬드의 설명이 적절하지 않다. 우선 작물화를 다루기에 앞서 그는 생활방식의 전환을 설명하기 위해 개인이 먹거리를 얻는 방식을 선택하는 것은 여러 가지 요소가 작용한다고 말한다. 흥미로운 점은 그토록 환경적인 요소, 객관적 증거에 호소하던 사람이 돌연 "사냥꾼은 자기 위신을 고려해야 하며, 음식의 선호 순위는 사람들의 생활 방식에 영향을 끼친다."라며 아주 태연하게 문화적 차이, 구성원의 의식을 끌어들인다. 음식의 선호 순위가 사람들의 생활 방식에 따라서 변하는 것이야말로 환경적인 이유로 설명 가능하지 않을까.

마지막,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취하고 있는 논증의 방식은 비판 받을 만하다. 그는 납작 엎드려 공격할 틈을 보여주지 않으며 철저히 자신을 보호한다. 그러나 그의 논증방법이 과학적으로 논리적이며 충분히 납득할만한 것인가 물어본다면 나의 대답은 '부분적'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다이아몬드는 반복해서 "과학적" 표현이나 용어에 의지하며 비과학적인 가설도 포장하는 태도를 보인다. 그는 인류 역사가 여태까지 가졌던 의문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책의 서론에서는 이 과학적인 태도를 보이기 위해 ‘유사실험’을 제시한다. 그런데 이 유사 실험의 사건 전개를 실제처럼 풀어보면 다이아몬드의 생각과는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모리오리족은 뉴질랜드 사우스 아일랜드의 남쪽 지역에서 넘어간 것을 보이는데 이 지역은 작물농사를 지속하기에는 너무 춥다. 오히려 마오리족들도 모리오리족처럼 사냥이나 채집, 고기잡이를 했을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채텀제도는 사실 "아(亞)남극"이 아니다. 대략 남위 45도쯤 걸친 이 섬들은 넓은잎나무들로 빽빽하고 자원도 풍부하여 자연에서 거두어들이는 것만으로 넉넉히 살았을 것이다. 그는 실험적인 방법을 채택하며 과학적으로 보이는 설정을 한다. 이를 보고 블로트 다이아몬드는 마치 "감히 과학과 싸워보겠다고?"라는 식의 태도를 보인다고 비판했다.

마무리

나의 눈에는 그는 분명 비판 받기를 두려워하는 과학자는 맞는 듯하다. 여태껏 많은 비판이 이루어져 왔지만 다이아몬드는 단 하나의 비판도 수용하지 않았다. 그는 비판을 반박하거나 또는 자신에게 불리할 때에는 응답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다이아몬드도 자신에 대한 비판을 다시 반박하기 위해 역사에 대한 지적이나 지질학적 자료를 검토해 보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마지막으로『총, 균, 쇠』가 훌륭한 책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두 사실인 양 맹종되어서는 안 된다.
김소연 2015-11-30 추천(0)
[북리뷰공모] 바리공주의 꽃으로 문지르듯이
무슨 꽃으로 문지르는 가슴이기에 나는 이리도 살고 싶은가.
바리공주. 그녀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내가 이 책을 보고 그랬듯이, 어릴 적 한번쯤 들어보았던 그 이야기를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가슴에 문지르면 죽은 사람의 피와 살, 혼을 다시 돌이켜서 살려준다는 꽃을은 그 이름도 다들 어여뻤다. 피살이꽃, 살살이꽃, 혼살이꽃.
그러한 신비로운 꽃송이들 중에서도, 무슨 꽃으로 문지르는 가슴이기에 이리도 살고 싶은가. 라는 의문을 던지고 있는 이 시는 책의 제목이 되었고, 그렇기에 내가 책을 받자마자 궁금함에 가장 먼저 읽게 되었던 시였다. 이 시를 포함하여, 이 책에는 미당 서정주의 대표적인 시 100수가 실려있다.

지금부터는 내가 그동안 미당 서정주 시인의 시를 읽으며 느꼈던 점과 이 책을 읽으며 내가 느꼈던 점을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그의 시는 마치 꽃과도 같다. 맑고 아름답다.
구수한 사투리나 길게 늘여 쓴 단어, 고운 우리 옛말, 구어의 느낌을 한껏 살려 쓴 시어들은 맑게 아름답다.
아름다움을 위해서는 파괴가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마치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발음을 뭉개거나 늘여 적어도 이상하거나 어색하지 않은, 되려 그래서 더 마음에 와닿는 시어들이 우리말의 신비와 매력을 잘 전해준다.
구어적인 표현들을 볼 때면 마치 시인이 바로 옆에 기대어서, 앞에 마주앉아서, 때로는 다정하게 때로는 허심탄회하게 나에게 이야기해주는 듯 하다.
특히 꼭두서니, 애살포오시와 같은 아름다운 시어들과, 머리에 인 물동이의 물 한 방울도 엎지르지 않고 올곧이 걸을 때애만 나(시인)와 눈을 맞추는 소녀의 이야기 같은 잔망스러운 글을 볼때면 마치 작은 꽃 한 송이를 선물받는 기분이 들어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그렇기에 그의 시는 나에게 꽃과도 같다.

그의 시는 아롱아롱하다. 또렷하지 아니하고, 흐리게 아른거린다. 묘하게 남아 입가에, 마음에 맴돈다.
섭섭하게, 그러나 아조 섭섭치는 말고../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라는 애매모호한 시어는, 마치 제 마음을 고대로 표현하지 않고 복합적인 감정을 헷갈리는 표현으로 내비치는 여성의 심리를 연상케 한다.
공감각적인 표현들이 많기에 더욱 아롱아롱하다.'강물이 풀린다','영원도 잘 보이는 날'과 같은 미당 서정주 시인의 표현들은 나에게 또렷하거나 명확하지 않은, 그러나 마음에 느낌으로 와닿아 아른거리는 하나의 심상(心像)으로 다가온다. '아롱아롱'이라는 단어의 뜻은 또렷하지 아니하여 흐리게 아른거린다는 뜻이 있다. 또 입밖으로 소리내어 발음해보면 간질간질하고 귀여운, 어여삐 사랑스러운 느낌이 든다. 그렇기에 그의 시는 아롱아롱하다.

미당 서정주 시인의 호, '미당(未當)'은 '덜 되어 부족하다'라는 뜻으로, 영원히 덜 자란 소년이고자 하는 마음이 담겨있다고도 한다.
완벽할 수 없음을, 부족한 점이 있을수 밖에 없음을 받아들이는 겸허한 마음이 담긴 그의 호가 공감을 자아낸다.
그는 자신의 한없는 부끄러움을, 사랑하는 어여쁜 이를 향한 수줍은 마음을, 거침없는 자신의 욕망을, 자신의 슬픔과 환희를 때로는 부드럽고 때로는 강렬한 시어로 노래한다.
바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마음의 안식과 자극을 동시에 주는 그의 시는 때로는 한 글자씩 꾹꾹 힘주어 누르듯, 때로는 살살 문질러 어루만지듯 우리에게 시공간을 초월한 기쁨과 슬픔, 웃음과 눈물, 상처와 위로를 준다. 그렇게 이 책의 제목인 '무슨 꽃으로 문지르는 가슴이기에 나는 이리도 살고싶은가'라는 시의 모티브가 된 바리공주의 이야기처럼, 그녀의 신비로운 꽃들처럼 우리의 살과 영혼을 어루만져 줄 것이다.
신범균 2015-11-26 추천(0)
[북리뷰공모] 미당 서정주 대표시 100선


올해는 故 서정주 시인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일찍이 천재 시인으로 불렸던 미당은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라는 본인의 시구처럼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갔다. 일제강점기 시대와 동족상잔의 비극, 군사정부와 문민정부를 겪은 그의 삶은 그대로 시 창작의 원천이 되었다. 이 책은 그런 그의 인생 자체라고 볼 수 있다.



시라고 해서 만만히 보면 안 된다. 특히, 천재의 글은 더욱 그렇다. 책 첫 장을 넘기는 순간 그의 천재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시와 직면한다. 너무도 당당히 쓰여 있는 ‘자화상’이라는 제목과 유독 눈에 띄는 시구. ‘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드라.’ 그의 친일(親日) 이력이 겹쳐지는 대목이다. 그러나 계속 읽어 내려가면 감탄이 새어나온다. 머릿속에 그려지는 이미지와 솔직하고 담백한 표현들로 인해 온 몸에 전율이 짜르르 난다.



그의 시들은 다소 호흡이 긴 문장으로 구성되며, 반복을 통해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누구도 따라 하기 힘든 뛰어난 관찰력과 자유로운 시구. 엮은이는 이를 ‘미당류’로 분류하며, 그의 독창성과 천재성을 평가한다. ‘내리는 눈밭 속에서는’(p.63)란 시에서는 따옴표와, 말줄임표, 반복의 활용으로 긴장감을 표현하고, 행간의 적절한 차이는 오묘한 속도감의 차이마저 느끼게 한다.



책 속에는 미당의 작품뿐만 아니라 일상생활 속 미당의 모습도 소개되어있다. 서정주 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엮은이는 미당 말년에 그와 말동무를 하며 겪었던 에피소드들을 회상하며 해설 편에 서술하였다.



미당 선생의 시는 꼭꼭 눌러 읽어야 한다. 흘러가는 눈동자 따라 읽어 내려가면 어렵다. 1차적 비유에서 벗어나 2차 추론과정이 필요하다. “가신 이들의 헐떡이는 숨결로 곱게 곱게 씻기운 꽃이 피었다.” (‘꽃’中) 꽃이 피어나는 땅과 먼저 땅으로 돌아간 사람들을 연결시키는 그의 시선을 따라가려면 보통 사람들은 천천히 따라가야 한다. 밥도 빠르게, 일도 빠르게, 걸음도 빠르게 걷는 세상에서 가장 느리게 보일정도로 천천히 읽어야 미당 시의 정수가 보인다. 오랜 시간 동안 빠르게 뛰느라 걷는 순간에만 보이는 것들을 지나치고 있는 학생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