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추천
편리의 유혹, 불편한 신세계
- 『멋진 신세계』를 읽고
들어가며
하나의 책이 하나의 메시지만을 전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일고 난 후에 계속 붙잡고 생각하게 되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는 왜 일부러 일을 망쳐놓으려고 그렇게 애를 쓸까?”(『멋진 신세계』 中, ‘레니나’의 생각)라는 말이 바로 그것입니다. 사실, 이 말은 본인이 이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입니다. ‘이 책은 왜 나를 이렇게 불편하게 만들까?’라는 생각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이 책을 읽게 되었을 때에 느껴지는 수많은 불편함 들이 있었는데, 이 중에서 몇 가지의 불편함 들을 관점으로 설정해서 이 책에 대한 대략적인 리뷰를 작성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 불편함 - 다른 세계
이 책의 배경인 이른바 ‘멋진 신세계’는 ‘포드주의’가 만연한 사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포드주의’는 철저한 분업화를 통해 효율성을 상승시킨 컨베이어벨트로 대표되는 효율성 이라는 가치를 절대적으로 추구하는 이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멋진 신세계’에서는 문화, 사상, 의학, 업무, 생명, 사회, 과학 등의 방면에서 다분히 효율적인 면만을 추구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효율성 추구는 우리가 쉽게 생각할 수 있듯이, 과학이 그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현재에 우리가 사는 세상도 효율성을 중시하고 있어서, 조금 단정적으로 말하자면, 사상적으로는 실용주의가 득세하고 있고 그 방편으로는 과학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분명 비슷한 사상이 지배적이라고 생각되는 두 세계인데, 왜 불편함, 또는 이질감이 드는지를 살펴봐야만 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어떤 의미에서 ‘성역’처럼 여겨지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생명, 특히 인간의 생명에 관한 부분이나, 마땅히 가져야 할 권리, 그 중에서도 인권 같은 것들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또한 실용주의가 만연하는 와중에도 ‘철학’이라든가, ‘문화’나 ‘예술’과 같은 인간 사유에 관련된 것들 또한 지켜져야 할 것들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멋진 신세계에서는 ‘효율’이라는 명목 아래에 이러한 성역들이 침범 당했습니다. 첫 번째 불편함은 이렇듯 성역들이 침범 당했다는 사실에서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지금의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효율성이란 이름 앞에서 말입니다.
두 번째 불편함
단순하게 생각하면 ‘작가가 반어법을 통해서 현실비판적인(이렇게 ’괴상한‘ 미래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의미에서) 작품을 썼구나, 내용과 현실, 그리고 제목을 비추어보면 오히려 역설적인 의미이구나.’라는 생각에 그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을 함으로써 다가오는 것은 더 큰 불편함이었습니다. 우리의 성역들이 침범당한 세상을 보고나니 이런 생각이 일었습니다. ‘철학, 인문학, 역사, 사랑, 우정, 도덕, 윤리, 문화, 예술 등등의 것들은 왜 지켜져야만 하는 것이지?’ 여기에서 부터 두 번째 불편함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책이 소설책이라는 것도 망각한 채로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탐독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조금은 슬픈 고백이 되겠지만 소설에서는 답을 찾지 못했고,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에도 ‘성역을 지켜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은 진행 중입니다. 그리고 더 충격적인 고백을 하자면 ‘멋진 신세계‘의 어떤 특정한 영역에서 불편함을 느꼈던 등장인물들을 설득하는 ‘멋진 신세계’의 입장에서의 말들에게서도 딱히 합리적이라고 생각될만한 항변은 저에게 없었습니다. 인간을 태어날 때부터 계급화하고, 세뇌하고, 인간을 기계화 하는 식과 같은 표면상의 일들에 대해선 비판할 수 있었으나, 왜 편한 길이 있는데 괴로워야 할까,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인간다움은 무엇일까 와 같은 조금 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서는 답을 할 수 없었습니다. 두 번째 불편함이란, 이러한 충격적인 신세계 때문에 드러나 버린 제 스스로의 생각 없이 살아왔던 삶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과장해서 말하자면 결국 생각 없이 설정한 ‘성역’들은 소설에서의 ‘세뇌’와 다를 게 무엇인가라는 생각도 들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 없음은 과학을 근거로 하는 편리함의 유혹에 제 자신을 끊임없이 흔들리게 했습니다.
세 번째 불편함
두 번째 불편함이 대답을 할 수 없는 ‘제 스스로’ 때문에 이야기 된 것이라면 세 번째 불편함은 책속의 등장인물 때문에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이 책에서 ‘직책’이 아니라 ‘이름’이 있는 모든 등장인물들은 저마다의 ‘불편함’이 있었습니다. 사랑에 대해서, 획일성에 대해서, 예술에 대해서, 다름의 대해서, 종교에 대해서, 과학에 대해서……. 하지만 두 번째 불편함을 토로하면서 말씀드렸다시피, 불편함을 느낀 등장인물들의 불편함에 대응하는 행동 그 어떤 것도 ‘답’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모두들 고민하고 있습니다만 다들 각자의 위치, 느끼는 수준 등에 따라서 다른 불편함들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느낄 수 있는 범위에 속하지 않는 것들은 ‘멋진 신세계’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당연하게 여기거나 웃어넘길 뿐이었습니다. 결국 그들의 당연함들과 저의 당연함들, 그리고 그들의 불편함과 저의 불편함이 일치하지 않는 것. 그것이 세 번째 불편함이었습니다. 즉, 저의 합리와 상식은 그들(멋진 신세계)의 합리와 상식이 될 수 없다는 것이었고, 이에 따라 진실이 무엇인지도 모르게 되어버린 것입니다.
편리의 유혹, 불편함을 넘어서서
이러한 불편함들이 모여서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말할 수 있다고 저는 이 글의 도입부에서 설명했습니다. 지배적인 이념이 현실 세계와 비슷한 ‘멋진 신세계’는 현실 세계의 ‘성역’들을 침범합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우리는 이러한 ‘성역’들이 왜 성역인지도 몰랐습니다. 근거 없는 ‘성역’들은 너무나도 철저하게 과학과 효율이라는 멋진 근거로 무장된 이념들에 의해서 대체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 ‘멋진 신세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이 책은 우리에게 이러한 불편함을 느끼게 해주고 스스로 생각해보게 만드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설에서의 등장인물들이 각각 다른 영역에서 불편함을 느꼈듯이 우리도 서로 조금씩 다른 방향에서 불편함을 느낄 것이라고 추측됩니다. 이러한 생각은 우리에게 현재의, 그리고 미래의 방향에 대한 실마리를 줄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위와 같이 이 책의 메시지는 조금 광의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학과 종교의 병립가능성이나, 인류에 대한 과학의 위험성과 같은 구체적인 주제들도 이 책에서 논의되고 있으나 이 책 전체의 메시지를 아우를 수 없는 국소적인 문제라고 여겨집니다. 과학이 필수불가결하게 모든 방면에서 이야기 되고는 있으나, 효율성이나 과학환원주의(모든 가치를 과학으로만 환원시키는 것)가 곧 과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과학은 방편일 뿐인 것입니다. 이는 우리의 생각, 사상, 이념 이라는 과학보다는 조금 더 근본적인 영역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합니다. 우리가 지금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불편함을 느껴보라고. 그리고 이러한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면 우리는 생각을 멈추게 될 것이라고. 결국 우리의 생각에 기반을 두지 않는 것들은 편리(효율성)이라는 과학에 기반을 두고 있는 이념에 흔들릴 수밖에 없다고. 그렇게 멋진 근거(효율적, 과학적, 편리적)에 의거해 만들어진 세계는 과연 멋지기만 할 것이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