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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전집. 1, 시
서명
김수영 전집. 1, 시
저자
김수영
발행처
민음사
발행년도
2014
ISBN
8937407132 

리뷰

강준구 2015-11-30 추천(1)
[북리뷰공모] 김수영전집을 읽고


'아니 그보다도 먼저



아까운 것이



지우산을 현장에 버리고 온 일이었다'



- 김수영 전집(시)을 읽고



 



 



흐릿한 김수영



중등교육을 제대로 마친 사람이라면 <풀>이란 김수영의 시를 한번쯤 본 일이 있을 것입니다. 풀이 보여주는 주체성으로, 그리고 뿌리가 누워도 뽑히지 않는 끈질김으로 민주주의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혹은 취하고 있는 자세를 보여준다는 식의 해석을 우린 쉽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한편, <푸른 하늘을>이라는 시도 분명 들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 역시 ‘자유’에 대한 시인의 생각이 드러납니다. 그래서인지 우리에게 김수영은 ‘참여 시인’의 면모가 더욱 돋보이며, ‘풀’과 ‘노고지리’와 같은 단어를 사용하여 민주주의와 자유를 드러낸 시인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본인도 김수영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그의 시 5편과, 그가 다소 직설적인 화법을 쓰며, 참여시인으로서의 면모가 대단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왜 직설적이었는지 또는 왜 참여시인의 면모를 보여줬는지, 혹은 김수영의 시를 읽고 본인은 어떤 생각을 했느냐고 묻는다면, 아무것도 답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이 시집을 펼치며, 저는 김수영에 대한 흐릿한 인상을 조금 더 선명하게 해보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그와 관련된 저의 생각을 정리하는 좋은 기회로 여겼습니다.



 



낡은 김수영



‘김수영 전집1 시’. 저는 평소에 시를 즐겨 읽습니다. 시집도 몇 권정도 집에 있으며, 학교에서 권장해준 것을 최대한 활용했었습니다. 그러나 전집은 처음이었습니다. 그 두께만큼이나 한 사람이 일생동안 노래한 것이 담겨있을 텐데, 그 무게를 본인이 감당, 소화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앞섰습니다. 아마, 책이 빨간색이것도 그 부담에 한몫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책은 읽어야만 했고, 책의 장들을 넘겼을 때, 처음 나온 시에서 저는 잠시 멈춰야만 했습니다. <묘정의 노래>. 제목도 무슨 뜻인지 몰랐고 읽고 난 후에도 한참 동안이나 시가 무슨 말인지 몰라서 고민했습니다. 게다가 심지어는 본인이 읽고 있는 것이 김수영 시집이 맞는가하고 다시 한 번 확인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시가 맞았고, 이것이 그가 시를 처음 섰을 때의 그의 시 느낌이었습니다. 처음의 그의 시에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참여시인의 김수영은 없었고, 마찬가지로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부르짖음도 알 수 없었습니다.



이후 저는 시집을 계속 읽어나갔습니다. 그러면서 느낀 점은 시간이 갈수록 뚜렷해지는 그만의 특징적인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초독을 했을 때에는, 안타깝게도 특정 단어로 그만의 특징을 명료하게 표현해내지는 못했습니다. 시간이 조금 지난 후에, 동영상 강의를 듣고, 김수영 문학관에 갔다 오고 나서야, 그 단어의 실마리를 얻었습니다. 삶, 정직, 자유,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참여, 뒤떨어짐에 대한 첨예한 인식 등, 이 몇 개의 말들은 김수영의 45년부터 68년까지의 시들을 묶어낼 수가 있었습니다.



먼저 김수영의 시에서는 사회적인 부분을 발견하기 전에, 조금은 개인적인 부분들을 발견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시를 읽다보면 ‘결핍’에 대한 그의 ‘서러움’과 ‘갈망’은 ‘정직’하게 그의 시에서 드러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결핍이란, 가지지 못한 것, 혹은 어느 기준에 비해서 뒤떨어진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에도, 그리고 본인 스스로에게도 결핍이 있었기에 그는 그것에 대해서 인식하고는, 때로는 사랑을 갈망하고, 자신이 인식한 현실에 대해서 더 나아졌으면 생각하는 부분을 갈망하며 그러한 것들을 정직하게 표현합니다. 한편, 서러움과 현실 사이에서 일어나는 괴리 때문에서인지, 그는 자괴감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훈계를 하기도 합니다. 김수영의 이 모든 생각들은, 여과 없이 시를 통해서 드러나게 됩니다.



한편, 통념적으로 김수영의 시들은 4.19를 통해 시의 사회 참여적인 성격이 강해졌다고 합니다. 김수영은 4.19의 관한 시를 몇 편이나 썼을 정도로 그 의미를 깊게 생각하고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의 이전에 시들에서부터 사회의 현상들은 조금씩 반영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에 대한 표현에서 사회까지 확장해 나갔다는 표현이 더 옳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에 대해서 생각하는 틀이나, 사회에 대해서 생각하는 틀이나, 앞서 말한 것처럼 뒤떨어진 것을 인식하고, 그것을 온몸으로 정직하게 밀고나가는 삶을 표현한 것이 김수영의 시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4.19이후에 우리가 살필 수 있는 분명하게 달라진 점은, 김수영이 더욱 직접적으로 사회 참여적인 시를 쓰고, 더욱 격렬하게 온몸으로 밀며 시를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그의 시는 처음에 <묘정의 노래>라는 시의 분위기보다 더욱 직설적이게 변했으며, 후에 이르러서는 과격한 언어도 불사하며 그의 생각을 시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무비판적이게 김수영의 의견이 옳다고 받아들이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했던 노랫말 가사는 조금씩 받아들이는 게 다를 수 있겠지만, 그가 희망하는 큰 뜻, 그가 생각했던 큰 의미, 큰 가치들은 시대가 흐른 지금에서도 퇴색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그가 노래했던 자유나 민주주의, 정직과 같은 부분들은 자칫 가볍게 보면 오늘날 이미 모두 이루어졌다고 여길 수 있기에, 그의 낡은 노래는 우리에게 더욱 신선합니다.



 



어두운 김수영



김수영과 시대적으로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본인은, 필연적으로 그 시대와 현재의 시대를 비교해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과연 우리가 사는 시대에 김수영이 살았더라면 김수영은 어떤 목소리를 내고 있을까 하며 말입니다. 곰곰이 생각해본 결과 김수영은 상당히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시대에 비해서 큰 의미에서 우리들의 ‘자유’는 보장 된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상승한 대부분의 자유는 ‘우리가 능력이 있다면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같은 것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시절처럼, 통금이 있거나하지는 않지만, 전시국가의 특성상 사상의 자유는 법으로, 관습적으로 한정되어 있고, 최근 들어서는 기본권상의 자유를 침해받는 수준의 자유의 퇴보도 이어졌습니다.



시의 전반적으로, 민주주의나 자유의 획득에 대해서다소 혁명적인 방법을 주장 하고 있는 김수영입니다. 기본권, 특히 언사의 자유가 침해당한다면 그것은 김수영의 뜻의 반대되는 일이란 것도, 김수영 문학관에 있는 산문집에서 확인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현재의 퇴보된 자유를 획득하기 위해서라면, 그 뒤떨어짐을 어두운 얼굴을 한 채로 인식하고 더욱 거친 말로 그것을 획득하기 위해 온몸으로 밀고 나갈 것이라는 예측이 됩니다.



그런 그를 생각해보니, 그가 무슨 말을 할지도 어렴풋이 짐작이 갔습니다. 삶, 자유, 정직,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참여, 뒤떨어짐에 대한 첨예한 인식……. 아마도 김수영은 이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 말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생각을 하고나니, 김수영의 <죄와 벌>이라는 시가 계속 저의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남에게 희생을 당할 만한 / 충분한 각오를 가진 사람만이 / 살인을 한다 // 그러나 우산대로 / 여편네를 때려눕혔을 때 / 우리들의 옆에서는 / 어린놈이 울었고 / 비 오는 거리에는 / 40명가량의 취객들이 / 모여들었고 / 집에 돌아와서 / 제일 마음에 꺼리는 것이 / 아는 사람이 / 이 캄캄한 범행의 현장을 보았는가 하는 일이었다 / - 아니 그보다도 먼저 / 아까운 것이 / 지우산을 현장에 버리고 온 일이었다 <죄와 벌>



 



이 시를 보고는 “이러한 일들을 행하고도 시에 이를 적을 만큼, 그의 작품에서 ‘정직’이라는 말을 빼놓을 수 없다”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를 읽고 처음 든 생각은 작품에 ‘죄’는 있는데, ‘벌’은 어디에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시인은 이러한 행동 후에 어떠한 감정으로 벌을 받고 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그런 문제를 모두 떠나서, ‘잘못’과 같은 큰 사건이 벌어진 일에 대해서, 뉘우침이나 발전적인 인식보다도 괜히, 누가 보았는지, 현장에 놓고 온 지우산과 같은 지엽적인 것들만 따지는 (어쩌면 속물적인, 솔직한) 그런 행위들이 저는 인상 깊었습니다.



어쩌면 현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어나오고 있는, 혹은 일어날 일들에 대해서 우리는 위 시에서 시인의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사회적 일에 무관심하고, 뒤떨어짐에 대한 무딘 인식을 보이며,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유’와 같은 큰 가치를 위해서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으며, 다만 떨어진 학점을 챙기고, 리포트를 쓰고, 오늘 먹었던 점심을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김수영에 따르면 죄를 진 우리의 벌은 어떻게 드러날까를 생각했습니다. 저는 어두운 김수영의 얼굴에부터, 아직도 미처 부르짖지 못한 자유에 대한 그의 목소리를 조금은 듣고 반성하게 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