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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박준 시집
저자
박준
발행처
문학동네
발행년도
2012
ISBN
9788954619578 

리뷰

김다영 2014-04-04 추천(1)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박준 시집


박준의 시에는 '미인'이라는 단어가 반복되어 나온다. 우리는 다들 저마다의 '미인'을 품고 있기에, 시를 읽으면서 여러가지 생각들을 하게 된다.



 「나의 사인은 너와 같았으면 한다」라는 시의 부분을 읽어보자.



 "창문들은 이미 밤을 넘어선 부분이 있다 잠결이 아니라도 나는 너와 사인이 같았으면 한다// 이곳에서 당신의 새벽을 추모하는 방식은 두 번 다시 새벽과 마주하지 않거나 그 마주침을 어떻게 그만두어야 할까 고민하다 잠이 드는 것// (중략) "다시 와, 가기만 하고 안 오면 안 돼"라고 말하던 여자의 질긴 음성은 늘 내 곁에 내근(內勤)하는 것이어서 // 나는 낯선 방들에서도 금세 잠드는 버릇이 있고 매번 같은 꿈을 꿀 수도 있었다"



시에서 여자의 질긴 음성은 "늘 내 곁에 내근(內勤)하는 것"이기에 이는 시간이 지나도 극복되지 않는 '우울'이다. 대상이 떠난 뒤에도 나를 대상으로 삼아 애증의 투쟁을 계속하는 상태인 것이다. 시에서 나는 "낯선 방들에서도 금새 잠드는 버릇이 있고 매번 같은 꿈을 꿀 수도 있"는데 이는 하이데거가 인간의 근본 정조(근본적인 기분)라고 규정한 "권태"의 양상이라고 볼 수 있다. '실존적 권태'를 겪는 개인은 세상과 자아의 공허함을 느끼게 된다. 권태를 느끼는 사람에게는 세상 모든 것의 가치가 동등하기에 나는 낯선 방들에서도 금새 잠들고, 매번 같은 꿈을 꾼다. 누구든 살면서 한 번은 이런 경험을 했고, 하게 될 것일테다.



이 시집을 읽고 나는 또다른 시와 소설을 떠올렸다. 많은 것들을 불러일으키는 좋은 시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