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추천
누군가가 ‘동아시아 고대사는 실재의 기술인가, 근대의 창출인가?’라는 질문을 해온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 것인가?
개인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물음이 결코 쉬이 대답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는 어찌 보면 지난 1세기 동안 한국사학계가 쌓아올린 학문적 성과 그 자체를 송두리째 흔드는 사안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만들어진 고대 : 근대 국민 국가의 동아시아 이야기의 저자 이성시는 그 서명에서 알 수 있다시피 이 불편한 물음(?)에 실로 과감히 도전하고 있다.
역자는 이 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이 책은 획기적인 사론집(史論集)이다. 왜냐하면 근대 국민 국가 체제라는 컨텍스트 속에서 동아시아의 고대 텍스트가
동아시아 각국의 근대 텍스트로 둔갑하여 만들어진 고대의 역사상을 해체하고, 새로운 고대 동아시아 역사상의 재구축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책 전반을 관통하는 저자의 문제의식은
‘오늘날 동아시아 고대사의 상당부분은 근대 국민 국가시대에 모종의 목적 하에서 만들어지고, 새로 쓰였다.’정도로 요약 될 수 있겠으며,
여기서 ‘모종의 목적’이란 이를 테면 ‘국민 정서의 고양’과 같은 지극히 현실적인 영역의 문제이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음 이러한 저자의 논리가 포스트 모더니즘 역사학의 그것과 어느 정도 유사하다는 것이다.
제목에서부터 그러하거니와, 본문에서도 ‘상상의 공동체’, ‘만들어진 전통’, ‘근대 컨텍스트’와 같은 용어들이 대거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일국사의 해체를 제창하고 있는 저자이지만, 그의 다른 연구 성과를 고려한다면 그를 반드시 포스트 모더니즘 역사가로만 단정 지을 순 없을 것이다.
다만 그가 이 책에서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국민과 민족이라는 근대적 상상의 공동체에 얽매여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지 말고,
당대인의 눈으로 역사를 바라보자는 것이다.
어쨌든 그의 이러한 주장은 사학도라면 으레 지향해야할 태도이지만,
동시에 오늘날 다소 민족주의적인(?) 국사체계에서는 불편한 진실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민족적이고, 일국사 중심의 역사 논리는 그 한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는 만큼, 이 문제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는 저자의 논리는 일면 힘을 갖는다고 생각된다.
본문 구성에 있어 저자의 고대사 인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부분은 역시 제 1부 1장 ‘고대사에 나타난 국민 국가 이야기’이다.
여기서 저자는 일본의 건국기념일과 북한의 단군묘 조정을 비교하면서 주위를 환기, 이로써 글을 시작하고 있다.
즉 저자는 북한의 단군묘 조성에 대해 시대착오적이라고 여기는 일본인들이,
도리어 자기네 건국기념일에 대해서는 당연한 듯이 받아들이고 있는 것에 의문을 품은 것이다.
저자는 바로 여기서 현재와 무관하다고 생각되는 저 아득한 고대의 일들이 실은 현재의 우리와 깊이 얽매여 있음을 생각하기에 이른다.
사실 패전 이후 일본 역사학계의 최대 과제는 황국사관의 극복에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실제로 그들은 실증을 미덕이 아닌 의무로 여겼으며, 보다 자유로운 역사관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한 것이다.
그러나 그 실증의 이면에는 황국사관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있었는데, 한반도 남부경영론(이른바 임나일본부)은 바로 그 대표적 예이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아직도 4세기부터 7세기까지의 일본 대외관계를 한반도 남부지배의 시작과 그것의 상실 과정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자국 중심의 고대사 인식이 비단 일본사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과 중국 역시 오늘날의 동아시아 정세를 고대에 투영하는 한편, 고대의 텍스트들을 저마다 자국의 입맛에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저자는 동아시아 각국에서 고대의 역사는 국민 창출의 논리가 되어,
마치 공동체의 동일성을 확인하기 위한 ‘이데올로기로서의 문화론’이 되었다고 새삼 지적한다.
그러나 이러한 자의적인 역사 해석은 역사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이야기의 상극을 초래해, 마침내 국가 간 역사 갈등으로 비화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이다.
실제로 역사 갈등은 국가간의 울타리를 형성하여 상호 이해를 가로막고, 그 과정에서 울타리는 점점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저자가 적절히 지적했다시피 그것은 자기와 타인을 갈라놓는 우리 내부의 담론이기 때문이다.
국민 국가가 이미 내용연한을 넘겼다고 말하는 이가 있지만,
저자가 말하듯 19세기에 창출된 국민 국가 이야기는 여전히 존재하여 동아시아 각국 사이에서 오히려 강화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재일 한국인 2세로서 한국인도, 그렇다고 완벽한 일본인도 아니었던 이성시는 제 3자의 눈으로 고대 동아시아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는 오늘날 상당 수의 고대사 이해가 근대 국민국가의 형성과정에서 만들어졌다고 논단했다.
만들어진 고대는 바로 그 문제의식의 산물인 것이고, 이러한 논의는 오늘날 한국사회에도 적잖이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것 같다.
최근 통일신라의 탄생을 근대의 발명으로 내려잡은 주장이나, ‘신라의 발견’과 같은 일련의 저서는
어쩌면 만들어진 고대와 같은 맥락에서 살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글쓴이가 만들어진 고대를 처음 접한 것은 학부 2학년 타과 전공시간이었다.
해당 교과명은 한국대외관계사로, 당시 글쓴이는 책을 직접 구입했음은 물론 심지어 한국에 강연차 방문한 저자의 친필 서명을 받고자 노력하기도 했었다.
특히 글쓴이는 책을 덮은 후 그때까지 경험하지 못한 무언의 회의감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기왕에 믿어온 한국사 체계의 신뢰에 금이 가는 순간 반동적으로 새삼 자각하게 된 것은 ‘객관성’과 ‘사료비판’의 중요성 바로 그것이었다.
돌이켜보면 사학도로서 글쓴이의 역사관은 만들어진 고대 이후 새롭게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도 항상 마음속에 담아두고 때때로 되새기는 한 구절을 소개하며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훗날 동아시아 사학사에서 20세기란 국민 국가의 거푸집 속에서
상상의 공동체를 창출하기 위한 이야기를 재생산한 ‘국사의 시대’로 자리매김 될 것임에 틀림없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도대체 우리는 ‘국사의 시대’에 짜여진 틀에서 언제쯤이면 해방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