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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
파우스트
저자
Goethe, Johann Wolfgang von
발행처
홍신문화사
발행년도
2011
ISBN
9788970558011 

리뷰

양주환 2014-05-26 추천(9)
파우스트
파우스트
줄거리 요약

-헌사(Zueignung)

-무대에서의 서막(Vorspiel auf dem Theater)

-천상의 서곡(Prolog im Himmel)

신과 악마 메피스토펠레스가 파우스트를 두고 유혹 속에서도 사람이 올바른 길을 찾을 수 있는지 내기를 한다.



메피스토펠레스 그럼 내기를 하시겠습니까?
그 녀석을 나리의 손에서 빼앗아 보이지요.
나리만 허락하신다면
그 녀석을 내 길로 슬슬 끌어 넣겠습니다.

신 그 사람이 지상에 살고 있는 동안은
네가 무슨 짓을 하든 나무라지 않으마.
인간이란 노력하는 동안 방황하는 법이니라.


-비극 제1부(Der Tragödie Erster Theil)

철학, 법학, 신학, 의학 등 인간의 모든 지식을 얻었음에도 파우스트는 한계를 느끼고 절망한다. 영적인 계시를 얻기 위해서 지령까지 부르지만 결국 실패하고 낙심하던 중 검은개로 분장한 악마 메피스토펠레스가 나타나 계약할 것을 권한다.
계약의 조건은 이 세상에서 메피스토펠레스가 파우스트의 종노릇을 하면서 인생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는 동안 단 한번이라도 파우스트가 현실의 쾌락에 만족하여 끝없이 솟구치는 지식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면, 즉 파우스트가 '순간을 향해 멈추어라, 너는 정말 아름답다!'라고 말한다면, 그의 영혼은 지옥으로 끌려가 이 세상에서와는 반대로 파우스트가 메피스토펠레스의 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파우스트 내가 언제라도 한가하게 안락의자에 눕게 된다면 나는 그것으로 끝장을 본 거야!
그럼 악수하자!
내가 어떤 순간을 향해 멈추어라, 너는 정말 아름답다! 라고 말한다면, 그때는 나를 꽁꽁 묶어도 좋다.
나는 기꺼이 멸망해 가겠다!

계약을 마친 뒤 메피스토펠레스 휘하의 마녀를 만나 젊음의 비약을 마시고 회춘한 파우스트는 그곳에 있던 마녀의 거울로 본 그리스의 절세미녀 헬레네에게 반하게 되는데, 비약의 부작용으로 길거리에서 만난 소녀, 마르가레테(작중에서 애칭인 그레트헨으로 불린다)가 마치 헬레네처럼 보이게 되어 첫 눈에 반하게 된다. 파우스트는 그레트헨에게 선물을 주거나 메피스토펠레스의 능력을 빌어 그레트헨의 방에 몰래 들어가 목걸이를 두고 오는 등 구애하다가 결국에는 관계를 맺게 된다.
이 과정에서 파우스트와 그레트헨의 관계를 못마땅하게 여긴 메피스토펠레스의 계략에 빠져 그레트헨은 자기 손으로 어머니를 죽이게 되고, 오빠 발렌틴마저 파우스트의 손에 죽게 된다. 거기다 시집도 안 간 몸으로 파우스트의 사생아까지 갖게 된다. 그레트헨은 아이를 연못에 버려 죽이고 죄인으로 감옥에 갇힌다.

파우스트는 그레트헨의 오빠를 죽인 죄를 피해 하르츠 산 속으로 도망쳐 있었는데 이 때가 마침 발푸르기스의 밤이라는 마녀들의 축제 기간이라 축제에 참가하게 된다. 발푸르기스의 밤이 끝나고 나서야 뒤늦게 그레트헨이 사형의 위기에 처해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파우스트는 메피스토펠레스를 협박해 그레트헨을 구출하러 간다.

파우스트는 감옥에서 고뇌와 굴욕으로 반쯤 미쳐버린 그레트헨을 구출해 내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이나 허사로 돌아가고 결국 탈출을 포기한 그레트헨은 사형당한다. 메피스토펠레스가 "그녀는 심판받았소!"라고 파우스트에게 말하지만, 하늘에서 "그녀는 구원받았노라!"라는 음성이 들린다.
메피스토펠레스는 파우스트를 이끌고 함께 자리를 떠난다.







-비극 제2부 (Der Tragödie Zweiter Theil)

헬레네를 만나기 위해 고군 분투하는 파우스트와, 호문클루스를 만나는 메피스토펠레스의 여행 이야기가 나온다.
위험에 처한 헬레나를 구한 파우스트는 그녀와 결혼하여 아들을 얻는다. 하지만 아들은 하늘을 날으려 하다 떨어져 죽고, 이 슬픔 때문에 헬레네도 저승으로 돌아간다.
다시 독일로 돌아온 파우스트는 반란군을 진압한 공로로 불모지를 하사받는다. 파우스트는 연령이 100세에 이르게 되고 메피스토펠레스가 불러낸 근심의 정령에 의해 눈까지 멀어 버린다. 하지만 그제야 비로소 인생의 참된 의의를 발견하고, 그 순간을 향해 ' 멈추어라, 너는 정말 아름답다!' 라고 외친다.






파우스트 ...
밖에서는 파도가 안벽을 치더라도 그 안은 낙원과 같은 나라다.
만일 바닷물이 흙을 갉아 강제로 침입하려고 하면, 모두 힘을 합하여 구멍을 막는다.
그렇다! 그 협력의 정신에 모든것을 바친다.
그것은 날카로운 지혜의 마지막 결론인데, 생활도 자유도 날마다 그것을 쟁취하려는 자만이 누릴 자격이 있는것이다.
그러니 여기서는 위험에 둘러싸여서 아이도 어른도 노인도 값진 세월을 보내는 것이다.
나도 그러한 사람들의 무리를 보면서, 자유로운 땅에서 자유로운 백성과 함께 살고 싶다.
그때 나는 순간을 향해 이렇게 말해도 좋을 것이다.
멈추어라! 너는 참으로 아름답다!고,
내가 이 지상에 산 흔적은 영원히 멸망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덧없는 행복을 예감하고, 지금 나는 이 최고의 순간을 맛본다.
(파우스트, 쓰러진다. 죽음의 영들이 받아 안고 땅에 뉜다.)





결국 메피스토펠레스가 애초의 계약대로 영혼을 빼앗으려는 찰나, 천사들이 내려와 파우스트의 영혼을 구원한다. 그리고 그의 영혼은 그레트헨을 다시 만나게 된다.



천사들 영의 세계의 고귀한 한 분이 악의 손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누구나 줄곧 노력하며 애쓰는 자를 우리는 구할 수 있습니다."



감상평

Es irrt der Mensch, so lang er strebt.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기 마련이다.
이 문구는 책의 시작을 연 문구이자 책의 마지막을 장식한 문구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노력하는 한, 방황하기 마련이라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였는가에 초점을 맞춰 감상평을 적어볼 생각이다.

먼저 파우스트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생각해보자. 파우스트는 끝없는 지식욕에 불타는 사람이다. 이미 책이 시작할 때부터 파우스트는 인간의 모든 학문과 지식을 철저히 연구하여 통달한 사람으로 등장한다. 파우스트는 마치 역사 속에 유명했던 철학자, 과학자들을 연상시킨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파우스트 역시 보상이나 명예를 바래서가 아니라 순전히 자신 안에 내재된 본능적인 지식욕에 이끌려 지식을 갈망하고 탐구한다.




모든 지식을 섭렵했음에도 그는 끝없이 샘솟는 지식욕에 따라 더 높고 근원적인 진리를 바란다. 세상을 다스리는 오묘한 내부의 힘, 일체 작용의 힘과 근원 등

그럼에도 지식을 통해 그가 알게 된 것은, 우리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지식의 한계 뿐이다. 파우스트는 좌절에 빠지고 모든 지식에 환멸을 느낀다. 하지만 환멸 속에서도 파우스트는 지식에 대한 욕구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벗어나려 애쓸수록 그것은 상념이 되어 그의 머리를 옭아맨다.

결국 파우스트는 끝없이 솟구치는 지식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쾌락에 기대기로 한다.

이 리뷰를 작성하기 전에 파우스트에 대한 많은 다른 리뷰, 감상을 읽어봤는데, 대부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기 마련이다" 라는 주제에서 노력을 파우스트의 끝없는 지식욕에, 방황은 지식욕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댔던 쾌락에 맞추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종래에 파우스트가 구원을 받는 계기는 그의 끝없는 지식욕과는 상관이 없다 봐야 하지 않을까? 마지막 순간에 파우스트는 메피스토펠레스가 의도했던 대로 '순간에게 말하고 싶다: 멈추어라! 너는 참으로 아름답구나!'라고 외치고 만다. 메피스토펠레스는 쾌재를 부르며 계약대로 파우스트의 영혼을 빼앗으려드나, 파우스트의 영혼은 오히려 구원을 받게 된다.

도대체 어째서? 메피스토펠레스의 계약대로라면 파우스트는 쾌락에 젖어 나태해진 자로써 저 말을 외쳤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파우스트는 메피스토펠레스가 제공하는 무수한 인간사의 쾌락 속에서도 사랑하는 이들을 상실했고, 어느 노부부를 죽게 만들어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즉 그는 쾌락에 몸을 맡겼을지언정 끊임없이 자신의 삶의 의미를 되새기며, 삶의 의미를 깨닫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100세의 노령으로 자신이 일궈온 모든 것을 돌아보다 '순간에게 말하고 싶다: 멈추어라! 너는 참으로 아름답구나!' 외친 것이다. 이 외침은 이제 같은 말일지언정 전혀 다른 의미를 갖고 재탄생한 것이다. 그 의미는 사고를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는 지식과 다른 차원의 것이라 생각한다. 마치 플라톤이 말한 이데아, 부처의 깨달음처럼 순전히 직관하는 그 자체로 영혼을 구원하고 행복을 일깨워 주는 그런 신적 직관이지 않았을까 생각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나는 파우스트에게 노력은 삶의 의미를 삶 속에서 생생하게 깨닫는 것이고, 방황은 지식욕, 쾌락 양자였다고 생각한다.


마치며

파우스트는 희곡 작품이다. 소설 문체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처음 다가서기 어색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절대 소설로 쓰인 파우스트는 상상하지 못할 것 같다. 괴테라는 독일 문학의 거대한 정신이 제기했던 삶의 의미에 대한 물음과 고찰이, 희곡 속 무대 위에서 독특한 등장인물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들려온다.
한번쯤 자신이 애써왔던 무언가가 부질없이 느껴지고 환멸감이 생길 때, 그로인해 자신의 삶이 의미를 잃어버렸다 자포자기하는 마음이 든다면, 한 번쯤 이 책을 읽고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기 마련이다라는 말'이 무슨 의미였는지에 대해 곱씹어 보는 것은 어떨까?


나도 내 생의 순간에 꼭 한번쯤은 파우스트와 같이 말할 수 있게 되길 바라며 리뷰를 마치겠다.
Werd ich zum Augenblicke sagen: Verweile doch! du bist so schön!
순간을 향해 이렇게 말하고 싶다: 멈추어라! 너는 참으로 아름답구나!